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한국 잠재성장률 하락에 대해 경고음을 잇따라 울리고 있다. 잠재성장률이란 한 경제가 물가 불안을 불러오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최대 성장률로, 국가 경제의 ‘기초 체력’이나 ‘민낯’을 보여주는 지표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데는 고령화, 낮은 노동생산성, 구조 개혁 지체 등 우리 내부 요인이 크다. 하지만 미⋅중 갈등,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대외 변수의 충격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한국 경제 기초 체력, 3분의 1토막
OECD가 추정한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01년만 해도 5.4%였으나 올해, 내년에 각각 1.9%, 1.7%까지 내려갔다. 20여 년 만에 3분의 1토막이 난 것이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10년(3.8%)부터 14년 연속 하락하고 있다. 장재철 KB국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실제 우리나라의 성장률이 크게 떨어진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한국 경제의 심각한 현주소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국 잠재성장률을 우려하는 곳은 OECD뿐만이 아니다. KDI는 작년 보고서에서 2023~2027년 2% 수준인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현재 생산성 수준을 유지할 경우, 2050년엔 0%까지 낮아질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IMF는 이달 한국의 잠재성장률 하락세를 반영해 내년 성장률 전망을 지난 3월 전망보다 0.2%포인트 낮은 2.2%로 제시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미국 경제 매체 CNBC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에 대해 “내부 요인에 따른 저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작년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50년 뒤 세계를 전망하는 보고서에서 12위인 한국 경제가 2075년 말레이시아, 나이지리아에 뒤지며 세계 15위권 밖으로 밀려난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골드만삭스는 2040년이 넘어가면 한국 성장률이 0.8%에 그쳐 주요국 중 일본(0.7%)과 나란히 최하위권에 속한다고 했다. 2060년대엔 주요국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성장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령화, 구조 개혁 지체로 저성장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덫에 걸려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 가장 큰 요인으로 인구 고령화가 꼽힌다. 2000년대 이후 출산율 급감에 따른 생산 가능 인구 감소로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고, 성장률은 고꾸라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생산 가능 인구(15~64세)는 지난 2019년 3762만7748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올해는 3637만2084명으로 4년 전보다 125만명가량 줄었고, 2060년에는 2000만명 수준으로 쪼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경제활동이 활발한 핵심생산 가능 인구(25~49세)는 2008년 정점(2010만명)을 찍고 일찌감치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일할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이 여러 명 몫을 해낼 수 있다면 저성장을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고령화에 대응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게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의 시간당 전 산업 노동생산성은 43.1달러(구매력 평가 적용)로 아일랜드(130.6달러)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미국(74.8달러), 독일(68.3달러), 영국(59.2달러) 등과 비교해도 크게 낮다.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 순위는 OECD 회원 38국 중 28위에 그친다.
생산성을 끌어올리려면 혁신적 기술이나 서비스 개발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철밥통 호봉제 중심의 노동 구조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이는 정치권의 무능과 이익집단 반발 속에 끝없이 지체되고 있다. 연금과 교육 개혁도 요원하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최근 한국 경제 보고서를 통해 “산업 구조 개편,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의 전환, 산업 혁신 기반을 구축해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저성장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했다.
도움 주신 분들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김우승 한국공학교육인증원장, 김원길 바이네르 회장,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김해련 태경그룹 회장, 김희 포스코 상무,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박일평 LG사이언스파크 사장,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박주봉 대주·KC그룹 회장, 변양균 대통령실 경제고문,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이방수 LG에너지솔루션 사장, 이성용 아서디리틀 한국 대표,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장광필 HD한국조선해양 전무, 조동철 KDI 원장,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가나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