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김모(31)씨는 최근 생활 자금이 필요해 대부 업체를 찾았다 퇴짜를 맞았다. 과거 대부 업체에서 300만~400만원 정도를 서너 차례 빌린 뒤 연체 없이 모두 상환했지만, 현재 고정 수입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김씨는 “대출 심사가 예전보다 훨씬 깐깐해진 것 같다”고 했다.

고금리와 물가 상승 등으로 서민들 살림살이가 팍팍해지고 있지만, 서민 급전(急錢) 창구로 불리는 대부 업체·저축은행의 ‘대출 절벽’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법정 최고 금리가 너무 낮은 탓에 영업이 어려워진 대부 업체들이 문을 닫거나 신용 대출을 대폭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둔화 속에 연체율이 급등하자 대출 심사가 깐깐해진 탓도 있다. 연말을 앞두고 월동(越冬) 준비를 해야 하거나 급히 생활비·병원비 등이 필요한 서민들이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금리와 물가 상승에 서민들의 급전 창구로 통하는 대부업체·저축은행 창구까지 닫히면서 서민들의 돈줄이 마르고 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한 취약 계층은 불법 사금융까지 손을 대는 실정이다. 사진은 22일 오전 서울 중구 충무로역 인근에 붙어 있는 카드 대출 광고물이다. /뉴시스

◇대부 업체 자금난으로 신규 대출 중단

대형 대부 업체 A사는 최근 1년째 신규 신용 대출을 사실상 중단했다. 월간 대출이 0건인 경우가 넉 달이나 된다. 한 달 내내 300만원 이하 소액 대출을 1건만 기록한 적도 두 번이나 있다. A사는 2~3년 전만 해도 월 평균 600억~800억원 정도 신규 대출을 했지만, 지금은 대출을 늘리지 않고 기존 대출금을 회수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담보가 없는 개인 신용 대출은 개점휴업 상태”라며 “당분간 신용 대출을 늘릴 계획이 없다”고 했다.

대부 업체들은 연 20%인 최고 금리로는 정상적 대출 영업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업계에 따르면 대형 대부 업체들이 저축은행이나 캐피털사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들어가는 평균 비용(금리)이 연 8~9%쯤 된다. 대부 업체의 평균 연체율이 8%쯤 되고, 회사 운영비로 7.5%가량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금리가 연 23~24%는 돼야 대출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A사 관계자는 “원가를 어떻게든 줄이려고 올 초 전체 직원(295명)의 절반가량(145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냈지만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A사는 대형 대부 업체라서 사정이 나은 편이다. 중소 업체인 B사의 조달 금리는 연 11~12%로 A사보다 2~3%포인트가량 높다. B사 대표는 “기존 대출자들이 상환하는 금액 중 일부를 재원으로 신규 대출을 유지하고 있다”며 “저축은행이 신규 대출 채권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금이라도 대출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2021년부터 우수 대부 업체들이 은행에서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유명무실 상태다. 우수 업체인 C사 대표는 “은행들이 대부 업체에 대출해주면 평판이 나빠진다는 이유로 대출을 거부한다”고 했다.

대부 업체들의 경영난이 심화하며 폐업은 가속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8년 금융 위기 직후 1만6000개가 넘던 대부 업체 수는 지난해 말 3분의 1 수준인 5582개로 급감했다.

그래픽=양인성

◇불법 사금융 내몰린 서민들

저축은행들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과 경기 악화 등으로 건전성 관리에 비상이 걸리면서 저신용자 대출을 줄이고 있다. 5대 저축은행의 올해 2분기 부실채권 규모는 2조5070억원으로 지난해(1조7979억원)보다 7091억원(39.4%) 늘었다. 중소 저축은행 D사 관계자는 “고금리가 길어지면서 올해 빚을 제때 못 갚는 고객이 크게 늘었다”며 “연체율을 낮추기 위해 하반기부터 신규 대출을 절반 이상 줄인 상황”이라고 했다.

대출 창구가 막히면서 서민들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있다. 직장인 이모(33)씨는 개인 회생 중이라는 이유로 최근 대부 업체에서 거절당한 뒤 대출 중개 사이트인 ‘대출 나라’에서 연 200~300% 넘는 이자를 요구하는 사채를 알아보고 있다. 이씨는 “급히 돈 구할 곳이 없어서 막막한 상황”이라고 했다.

대부 업계에서는 2019년부터 2022년 사이 줄어든 대부 업체 이용자 120만명 중 97만명(80%) 정도가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밀려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민금융연구원이 지난해 대부업 이용자 3500여 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14%가 대부 업체 대출 거절 시 “불법 사금융을 통해 돈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또 불법 사금융 이용자 315명을 설문조사했더니, 연 1200%가 넘는 이자를 낸 비율이 10.8%나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