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제품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이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13일 서울 시내 한 마트. /연합뉴스

제품의 용량을 줄이는 꼼수로 사실상 가격을 올린 효과를 내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 정부 실태 조사에서 확인됐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양을 줄이는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3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공정거래위원회·산업부 등 관계 부처와 슈링크플레이션 관련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공정위와 한국소비자원은 슈링크플레이션 사례를 공개하고, ‘용량 축소 등에 대한 정보 제공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실태 조사를 통해 슈링크플레이션이 확인된 만큼 신속하게 관련 규정을 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추 부총리는 “변칙적인 가격 인상이 근절되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소비자원은 “견과류·김·만두·맥주·소시지·사탕·우유·치즈·핫도그 등 9개 품목, 37개 상품에서 올해 슈링크플레이션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올해 1월 HBAF는 ‘허니버터아몬드’ ‘와사비맛아몬드’ 등 16개 아몬드 상품 한 봉지 용량을 210g에서 190g으로 줄였다. 같은 달 CJ제일제당은 ‘백설 그릴 비엔나’ 한 봉지를 640g에서 560g으로 줄였다. 지난 7월 서울우유는 ‘체다치즈’ 20매를 400g에서 360g으로 줄였고, 지난 10월 연세유업은 ‘연세대학교 전용목장우유’ 1000mL를 900mL로 줄였다. 작은 팩은 200mL에서 180mL로 줄었다.

그래픽=김성규

소비자원이 집어낸 37개 상품은 기존 용량에 비해 평균 12%(약 27g 또는 mL) 줄었다. 슈링크플레이션이 가장 심한 건 풀무원 핫도그 제품이었다. ‘모짜렐라 핫도그’ ‘체다모짜 핫도그’ 등은 한 봉지에 400g(5개)이 들어 있었는데, 지난 3월 320g(4개)으로 20% 쪼그라들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일부 제조사는 용량 변경은 인정하지만, 포장재·레시피 등이 변경된 ‘리뉴얼 상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HBAF나 연세유업은 홈페이지를 통해 용량 변경 사실을 알리고 있다. 이처럼 주요 생필품의 용량·규격·성분 등이 바뀌면 포장지나 제조사 홈페이지를 통해 알릴 의무가 부과될 전망이다. 공정위는 이를 알리지 않으면 ‘사업자 부당 행위’로 지정될 수 있도록 고시 개정 작업에 착수한다. 한 번 위반하면 과태료 500만원, 반복 위반하면 최대 1000만원을 과태료로 물게 된다. 이승규 공정위 소비자정책총괄과장은 “과태료 금액은 많지 않지만 ‘소비자를 속인 기업’이라는 낙인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대형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시행 중인 단위 가격 표시 대상 품목도 현행 84개에서 더 늘리고, 산업부는 연구 용역을 통해 온라인 매장에서 단위 가격을 표시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감시 체계도 보강한다. 소비자원은 내년부터 가격조사전담팀을 신설하고, 가격 정보 포털인 참가격에 공지하는 품목을 현행 128개(336개 상품)에서 158개(500여 개 상품)로 확대한다. 앞으로는 중량 변동 정보도 조사한다. 이를 위해 유통업체와 자율 협약을 맺어 1만여 개 상품에 대한 용량 정보를 받아 용량 변경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