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통화정책의 방향타를 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마침내 내년 금리 인하 신호를 쏘아 올리면서, 세계 경제의 이목은 금리 인하가 일으킬 파급효과로 쏠리고 있다.

과거 미국이 금리를 내리면 시차를 두고 미국 소비와 기업 투자가 살아나 수출국 경기도 덩달아 좋아지고, 자본 시장에 온기가 도는 경우가 많았다. 2008~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이 촉발한 세계 금융 위기가 자칫 대공황으로 번질 뻔했던 절체절명 상황에서 연준은 연 5~5.25%였던 기준금리를 1년 4개월 만에 0~0.25%로 5.0%포인트 낮춰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았다. 연준의 발 빠른 금리 인하로 위기를 넘긴 미국 경제는 이후 2020년 코로나 직전까지 128개월이라는 역대 최장 경기 확장기를 맞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덮친 2020년 초에도 연준은 다시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빠르게 낮추면서 경제 붕괴를 막았고, 이후 뉴욕 증시를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은 전에 없던 랠리(상승 장세)를 펼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를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풀린 막대한 돈이 언제라도 다시 물가를 밀어올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데다, 실업률이 역사상 최저 수준인 3%대를 유지할 만큼 경기 침체와는 거리가 먼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리를 내려도 인하 폭이 생각만큼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앞서간 시장의 기대는 섣부른 것이 될 수도 있다.

◇과거 경기 침체 땐 큰 폭 인하, 이번엔 소폭 그칠듯

1990년 이후 연준은 크고 작은 금리 인하를 다섯 차례 단행했다. 이 중 네 차례는 경기 침체에 대응하는 큰 폭 인하였지만, 한 차례는 경기 확장기에 ‘찔끔’ 인하에 그쳤다.

1990년대 초반의 5%포인트 넘는 큰 폭 금리 인하는 저축대부조합 도산 사태와 걸프전 등이 촉발한 경기 침체 국면에 맞서 단행됐다. 2000년 말~2003년 중반에도 5.5%포인트의 과감한 금리 인하가 있었다. 이때는 IT 거품 붕괴로 경기가 침체된 시기였다. 그 뒤로는 2008년 금융 위기,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때 금리를 끌어내렸다. 금리 인하가 단행되는 중에는 실업률이 오르고 성장률이 꺾이지만, 인하가 끝나고 나면 이내 경제가 살아나는 모습이 반복됐다.

이례적인 경우가 1990년대 중반의 소폭 인하 때다. 1995년 물가 상승세가 무뎌지고 고용 여건이 나빠지자 당시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은 금리를 연 6.0%에서 5.25%로 살짝 낮췄다. 이후 경제가 순항하자 다시 금리를 올렸다가 1998년 아시아 외환 위기가 오자 소폭 인하를 또 단행했다. 인하 폭은 0.75%포인트로 크지 않았다.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의장 시절 미 연준에서 9년 넘게 이코노미스트로 일한 김진일 고려대 교수는 “미국 경제가 현재까지 잘 버티고 있고, 내년 상반기에도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큰 폭 인하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연준은 13일(현지 시각) 경제 전망을 통해 장기 실업률을 4.1%로 전망했다.

◇제로 금리 시대는 다시 안 온다… ‘중금리 장기화’

미국 경제는 아직 경기 확장기의 종반부에 있다. 내년 경제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에 따라 금리 인하 폭도 결정될 전망이다. 벤 버냉키 의장 시절 연준 특별 보좌관을 지낸 앤드루 레빈 미 다트머스대 교수는 13일 야후파이낸스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는 팬데믹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못했다”며 “에너지와 주거비 등을 제외한 수퍼코어 서비스 물가 등은 아직도 높다”고 지적했다. 금리를 화끈하게 내리기에는 물가 상승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라는 의미다.

실제 13일 연준이 내놓은 향후 금리 전망 수준을 봐도 내년 말 금리를 4% 중·후반, 2025년 말에도 3% 중·후반대 금리를 예상하고 있다. 이상형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미국의 노동시장 상황, 글로벌 인플레이션, 공급망 대응, 이에 대응한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 등을 고려할 때 단기간에 (금리가) 코로나 이전 환경으로 가긴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라고 말했다. 금융 위기 이후 있었던 제로 금리 시절이 다시 오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픽=양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