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수출이 살아나면서 11월 경기 선행지수가 99.9를 기록했다. 경기 상승 전망 신호인 100 달성을 눈앞에 둔 것이다. 다만 아직은 기지개를 켜는 단계다. 지난달 전(全) 산업 생산은 증가했지만, 소비는 사실상 보합에 머물렀고 설비 투자는 오히려 감소했다. 경기 회복 신호는 엿보이지만, 체감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고 말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수출의 양호한 신호가 내수 쪽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현 시점 정책 당국의 가장 큰 과제”라고 했다.
◇이달 반도체 수출액 100억달러 넘을 듯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11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 산업 생산은 한 달 전보다 0.5% 증가했다. 제조업 생산이 전달보다 3.3% 늘었는데, 반도체가 12.8% 증가하면서 생산 확대를 견인했다.
반도체가 팔리지 않아 쌓이던 재고도 줄고 있다. 지난달 반도체 재고는 3.8% 감소하며, 지난 9월(-6.7%)과 10월(-7.6%)보다 감소 폭은 줄었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AI(인공지능) 서버용인 고용량·고부가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면서 수출량이나 가격 모두 오르고 있다”고 했다. 이승한 기획재정부 종합정책과장은 “반도체는 이번 달 월 수출 기준 1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며 “이 경우 작년 9월 이후 15개월 만에 100억달러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정부는 12월 전체 수출액이 월 기준으로는 올 들어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지난달 경기 선행지수는 99.9로 한 달 전(99.7)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통상 경기 선행지수가 100을 넘으면 3~6개월 후 경기가 상승한다는 의미인데, 그 문턱에 다다른 것이다. 경기 선행지수는 지난해 11월(100.1) 이후 100을 넘지 못하고 있지만, 지난 5월(98.6) 이후 상승 혹은 보합을 유지하고 있어 완만한 경기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신호로 해석된다.
◇내수는 아직 온기 안 돌아
반도체발(發) 훈풍이 불고 있지만, 그 온기가 당장 체감 경기를 끌어올리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달 소비에 해당하는 소매판매는 한 달 전보다 1.0% 증가했다. 우리나라 코리아세일페스타(11월 11~30일) 등 소비를 부추기는 대형 할인 행사가 있었던 것치고는 저조한 성적이다. 특히, 자동차 소비를 제외한 나머지가 보합세인 점 등을 고려하면 정부도 ‘전반적인 소비가 살아났다고 말하기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설비투자는 운송장비와 기계류 투자가 모두 줄며 전달보다 2.6% 줄었다. 내수에 온기가 돌려면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반도체 경기 회복에도 화학 등 일부 업종의 업황이 나빠지면서 12월 제조업 체감 경기는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 제조업 업황 BSI는 전달과 같은 70을 기록했다. 반도체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지면서 기타 기계·장비, 전자·영상·통신장비의 체감 경기는 개선됐다. 하지만 중국산 저가 화학제품 공급으로 업황이 나빠지면서 화학물질·제품은 부진했다. 금속가공도 전방산업인 건설 부문 경기 악화로 가공 수요가 감소하면서 체감 경기가 나빠졌다.
한편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불안’으로 건설 투자 등이 경기 회복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승한 기재부 과장은 “부동산 PF는 대표적인 잠재 위험 요인이고, 내년 성장률이 올라가더라도 가장 안 좋은 부문은 건설 투자일 것으로 본다”고 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는 “고금리에 소비와 투자는 위축된 모습이라, 사실상 내년 상반기까지는 반도체만 나 홀로 경기 회복세를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