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이 담보 대출의 거래 조건을 짬짜미했다는 혐의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칼을 빼들었다. 전형적인 ‘정보 교환 카르텔(담합)’이라는 것이다. 담합으로 벌어들인 매출액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어 수천억원대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8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KB국민·우리·신한·하나은행의 담합 행위에 대한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발송했다. 심사보고서에는 이 은행들이 개인과 기업을 상대로 담보 대출 업무를 하면서 거래 조건을 짬짜미해 부당하게 이득을 봤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이 물건별 담보인정비율(LTV) 산정 방법 등 대출에 필요한 세부 정보를 공유하면서 고객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대출 조건이 설정되지 않도록 담합을 벌였다는 것이다.
각 은행은 통상 한 해에 1~2번씩 지역과 부동산별로 최소 500개에서 많게는 7000여 개 이상의 담보물에 대해 LTV를 적용해 사전에 대출 가능 금액 등을 산정하는 절차를 밟는데, 이때 정보 공유 차원에서 각 은행이 산정한 LTV 등 관련 정보를 서로 알려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정부 관계자는 “상대방 패를 보고 카드를 치는 게 어떻게 공정 경쟁이냐”고 했다. 다만, 조사 초기에 제기됐던 대출 금리 담합 의혹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말 개정된 공정거래법에 따라 공정위는 경쟁사업자 간 가격 등 정보 교환을 합의해 시장의 경쟁을 제한하는 것을 정보 교환 담합으로 보고 제재한다. 이번 사건은 정보 교환 담합이 적용되는 첫 사건이 될 전망이다.
은행들은 담합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다른 은행의 정보를 단순히 참고하는 차원에 그쳤으며, 정보 교환을 통해 실질적으로 발생한 이득은 없었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LTV 관련 정보 공유가 금리나 대출 한도와 같은 대출 거래 조건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