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면서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 은행 대출 연체율은 2개월 연속 상승해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대기업 대출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연체율이 줄줄이 올랐다. 저축은행·증권사 등 2금융권보다는 양호한 수준이지만, 우량 고객을 상대하는 은행도 연체 지표가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번지며 건설업이 부진하면서 1월 기업 체감 경기는 11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은행 연체율, 2019년 이후 가장 높아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11월 말 국내 은행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이 0.46%를 기록해 한 달 전보다 0.03%포인트 올랐다. 1년 전보다는 0.19%포인트 상승했다. 2019년 11월(0.48%)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부문별로 보면, 가계 대출 연체율이 0.39%로 전월보다 0.02%포인트 상승했다. 1년 전보다는 0.15%포인트 올랐다.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한 달 전보다 0.01%포인트 오른 0.25%였고,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신용대출 등) 연체율은 0.05%포인트 오른 0.76%를 기록했다.
기업 대출 연체율은 0.52%로 한 달 전보다 0.04%포인트 올랐다. 특히 중소기업과 개인 사업자가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중소 법인과 개인 사업자 연체율은 전월보다 0.05%포인트씩 올라 각각 0.64%, 0.56%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기업 대출 연체율은 0.18%로 0.01%포인트 내렸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규 연체 확대로 연체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신용 손실 확대 가능성에 대비해 대손충당금 적립을 늘려 손실 흡수 능력을 키우는 등 건전성 관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금감원은 연체율이 높은 은행을 중심으로 부실채권 정리 등을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금감원 관계자는 “연말에는 통상 연체 채권 정리 규모를 확대하므로 12월 말 연체율은 하락할 것”이라고 했다.
◇고금리 길어지면서 대출 부실화
전문가들은 “고금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각종 대출이 부실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는 “국내 은행 원화대출 연체율은 장기 평균을 봤을 때 아직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면서도 “올해도 매출 부진이 예상되는 개인 사업자,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 연체율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 금융기관이 원리금을 상환받지 못할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정환 한양대 교수는 “자영업자, 취약 계층 등의 연체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밑바닥 경기부터 리스크가 올라오는 상황”이라고 했다.
2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더 심각하다. 작년 9월 말 기준 증권사의 연체율은 13.85%, 저축은행은 5.56%, 캐피털 등 여신 전문 업체는 4.44% 수준이다. 이들의 PF 대출 잔액은 각각 6조3000억원, 9조8000억원, 26조원에 달한다.
기업들은 현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2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달 전 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전달보다 1포인트 하락한 69를 기록했다. 지난해 2월(69) 이후 11개월 만에 최저치다. 비제조업 BSI는 67로 전달보다 3포인트 하락했다. BSI는 현재 경영 상황에 대한 기업가의 판단과 전망을 바탕으로 산출해 기업들의 체감 경기를 나타낸다. 부정적 응답이 긍정적 응답보다 많으면 지수가 100을 밑돈다.
업종별로 보면, 정보통신업(-8포인트)과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7포인트)의 체감 경기가 특히 부진했다. 건설업(-5포인트) 체감 경기도 나빠졌다. PF 사태로 인한 자금 조달 금리 상승,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건설 설계 용역 발주가 감소한 영향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