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55~64세 임금 근로자 100명 가운데 34명은 기간제 근로자 등 임시고용직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등이다. 이는 과도한 연공서열식 임금 구조에 따른 것으로, 노동시장이 정규직 12%와 비정규직 88%로 양극화되는 ‘12대88′의 이중 구조를 가속화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20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중장년층 고용 불안정성 극복을 위한 노동시장 기능 회복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 55∼64세 임금 근로자 중 임시고용 근로자는 34.4%였다. 이 비율은 OECD 36국 중 가장 높고, 2위 일본(22.5%)과 격차도 10%포인트 이상 났다. OECD 평균(8.6%)의 4배이고, 미국(2.9%)이나 독일(3%)의 10배가 넘었다.

그래픽=김하경

임시고용은 기간제나 파견 및 일일 근로자 등을 일컫는 용어로, 정규직에 비해 불안정한 고용 형태다. 우리나라 중장년층의 고용 불안정성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는 뜻이다.

◇60세 한국 남성 근속 연수 2.7년…미국은 9년

50대 후반 A씨는 작년 대기업에서 권고사직 형태로 퇴직한 뒤, 최근 계약직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업했다. 매년 고용 계약을 갱신하고 월급도 200만원 남짓으로 확 줄어들었다. 과거엔 상상도 못 한 대우지만, 퇴직 후 경비원 자리도 못 구하는 사람이 많다는 뉴스를 보며 “이것도 감지덕지”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A씨 같은 사례는 우리 주변에 많다. KDI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남성 임금 근로자의 중위 근속연수는 40대 중반 이후 증가하지 않고 50대부터 확 줄어든다. 중위 근속연수란 전체 근로자의 근속연수를 긴 순서로 정렬했을 때 한가운데 값이다.

미국과 비교하면 뚜렷하다. 40세 때 한국 남성 근로자의 중위 근속연수는 5.3년으로 미국(5년)보다 약간 길다. 그런데 50세가 되면 한국이 7년으로 미국(8년)보다 짧아진다. 한국은 53세 때 최고치인 10년을 기록한 뒤, 이후 60·70세가 되면 각각 2.7년·2.3년으로 확 줄어든다. 반면 미국은 9년·11년으로 계속 늘어난다.

그래픽=김하경

국내 여성 근로자는 중위 근속연수가 남성보다 짧고, 40대 때부터 증가세를 멈춘다. 출산, 육아 등으로 회사를 떠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보다 출산율이 높은데도 여성 근속연수는 꾸준히 늘어난다. 60세 한국 여성 근로자의 중위 근속연수는 2.5년인데, 미국은 10년이다.

해고가 비교적 자유롭다고 알려진 미국도 연령이 높아지는데 따라 근속연수가 오르는데, 오히려 한국은 50대(남성)나 40대(여성)를 기점으로 꺾이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과도한 연공서열형 임금구조가 중요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연차에 따른 임금 상승의 속도가 가파르기 때문에, 회사는 고연봉의 중장년층 근로자를 ‘회사 밖’으로 밀어내고 경력이 단절된 여성 근로자를 ‘회사 안’으로 들이기 꺼려한다는 것이다.

OECD에 따르면, 국내 근로자의 근속연수가 10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날 때 임금 상승률은 평균 15.1%였다. 이는 관련 수치가 있는 OECD 27국 중 가장 높고, OECD 평균(5.9%)의 2배 이상이다.

◇”과도한 연공 임금제 완화해야”

중장년 정규직 노동 수요가 줄면,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도 심화된다. 정규직으로 한 직장에 오래 머무르는 근로자는 높은 임금과 안정성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기존 직장을 나온 중장년층과 경력 단절 근로자는 재취업이 어렵다. 재취업해도 저임금이 대부분이다. 고용이 불안정해 직장을 옮기는 일도 잦다. 2019년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설문조사에 따르면, 50~60대 퇴직자 10명 중 8명은 재취업을 했는데, 이들 중 절반은 2번 이상 일자리를 옮겼다. .

KDI는 연공 서열 체계를 완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직무급·성과제 방식을 제안했다. 생산성이 빠르게 증가하는 일정 기간 이후로는 연공 서열에 의한 임금 상승을 제한하고, 직무와 성과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방식을 채택하자는 것이다. KDI는 “현재 시행 중인 공공부문 직무급 확대 정책을, 유사한 산업에 속한 공기업과 민간 기업 등으로 확산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