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양진경

10년 넘게 감소세를 이어가던 결혼이 다시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31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혼인 건수는 5만4155건으로 1년 전보다 0.4%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재혼을 뺀 초혼만 놓고 보면 2%대 증가율을 보였다. 평생 독신 생활을 청산하고 결혼으로 가정을 꾸리는 사람이 늘었다는 뜻이다.

남자가 초혼인 경우가 4만6215건으로 1년 전보다 2% 늘었고, 여자가 초혼(4만5268건)인 경우도 1년 새 2.5% 늘었다. 남녀 모두 초혼이 1분기 기준으로 2020년 이후 4년 만에 최대치다.

남녀의 초혼 건수는 모두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1년 연속 줄었다가, 지난해 1%가량 상승했다. 당시 “코로나 사회 두기가 전면 해제되면서 미뤄왔던 결혼이 반짝 늘어난 일시적 현상”이란 분석이 나왔지만, 올 들어 초혼 증가율이 2%대를 넘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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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독신주의 줄어드는 신호

결혼 정보 회사 가연 관계자는 “최근 들어 결혼 문의가 많고 실제 성사 건수도 늘어나는 추세”라며 “학력, 직업 등 조건을 따지기보다는 결혼할 의지가 있는 예비 배우자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했다. 재혼이 아니라 초혼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비혼(非婚)주의나 독신주의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전영수 한양대 교수는 “‘경제적 결합’ 성격이 강한 재혼과 달리, 초혼 위주의 혼인 증가세는 출산율 회복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청신호”라고 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처음 결혼한 남자의 평균 연령은 34세, 여자는 31.5세다. 재혼(남자 51.4세, 여자 46.9세)보다 15~17세가량 적다.

결혼에 대한 진입 장벽을 스스로 낮추고 합리적인 결혼 플랜을 세우는 예비 부부가 늘어나는 점도 초혼이 늘어난 원인 가운데 하나로 풀이된다. 가연 관계자는 “어느 한쪽에서 혼수를 전담하는 것을 원하거나 경제력을 많이 보는 경우가 줄어드는 분위기”라고 했다.

◇대구는 8분기 연속 결혼 늘어

통계청 관계자는 “대구와 대전 등 일부 지자체의 결혼 지원책 효과가 나타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특히 결혼 7년 이내 신혼부부에게 최대 연 320만원의 전세 대출 이자 상환액 지원 등 결혼 지원책을 내건 대구의 경우 지난 1분기 혼인 건수가 2410건으로 1년 새 13.3% 늘었다. 대구의 혼인 건수는 2022년 2분기부터 8분기 연속으로 증가세를 이어 왔는데, 이는 1982~1983년 이후 40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대구의 경우 지난 3월 혼인 건수가 763건으로 1년 새 9% 늘어 증가율이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위였다. 2위는 대전(5%), 3위는 세종(1.3%)이었다. 대구 인구 1000명당 지난 1분기 결혼 건수는 4.1건으로 2019년 이후 5년 만에 가장 많았다. 1년 전보다 0.5건 늘어난 수치로, 전국 지자체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대구는 지난해 12월부터 4개월 연속으로 전국 시도 혼인 증가율 1·2위를 기록할 정도로 혼인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는데, 지자체의 결혼 지원책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세 대출 이자 상환액 지원 프로그램의 경우 지원 건수가 2021년 1018건, 2022년 1206건, 작년 1433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또 일반 예식장이 아닌 공공시설 등에서 1000만원 이하의 비용을 들여 ‘작은 결혼식’을 올리는 예비 부부에게는 100만원을 지원한다.

◇지자체 결혼 지원책도 효과 나타나

대구 달서구가 오는 15일 달서별빛캠핑장에서 주관하는 ‘반디별데이트’에는 남녀 60명가량이 신청한 상태다. 정원 20명의 3배다. 지난 4월 열린 ‘달고나 초콜릿 데이트’에도 신청자 50여 명이 몰려들어 경쟁률이 2.5대1을 넘었다. 달서구 관계자는 “매년 데이트 모집 때마다 정원의 2~3배 인원이 참가한다”고 말했다. 결혼 적령기 자녀를 둔 부모끼리 먼저 만남을 갖는 예비 사돈 간 모임인 ‘내 자녀 천생연분 찾는데이’ 행사에서도 4년간 자녀 62쌍이 커플로 탄생했다.

지난 3월에 혼인 건수 증가율 2위를 기록한 대전은 올 1월에 혼인 건수가 519건으로 500건대로 올라서더니 3월에는 546건으로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택 담보 대출이나 전세 자금 대출 이자 감면 방식으로 신혼부부에게 연 최대 450만원을 지원해 온 대전시는 올해에는 만 19~39세 초혼 부부에게 500만원(1인당 250만원)의 ‘결혼 장려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자녀를 낳을 경우 시가 제공하는 임대주택 월세액의 50%(자녀 1명)나 전액(자녀 2명 이상)을 감면해 주기도 한다. 지난달 대전에서 결혼한 회사원 김모(32)씨는 “돈을 좀 더 모아 내년쯤 결혼할까 생각 중이었는데 대출 이자 등 각종 지원책 때문에 결혼 시기를 앞당겼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