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병원 신생아실에서 신생아들이 휴식을 취하는 모습. /뉴스1

올 들어 9월까지 태어난 신생아 수가 1년 전보다 늘었다. 1~9월 출생아 수가 전년보다 늘어난 것은 2015년이 마지막이었다. 인구 감소가 아니라 인구 소멸을 걱정해야 할 만큼 심각한 우리나라의 저출생 현상이 9년 만에 바닥을 찍고 반등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 1~9월 출생아 수는 17만8600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17만7315명)보다 0.7% 늘었다. 8월까지는 출생아 수가 1년 전 수준을 소폭 밑돌았는데, 9월 출생아 수가 2만590명으로 1년 전보다 10.1% 늘어나며 반등을 이뤄냈다. 월별로 출생아 수 증가율이 10%를 넘은 것은 2011년 1월 이후 13년 8개월 만이다.

27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올해 1~9월 출생아 수는 17만8600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0.7% 늘었다. 현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15년 이후 9년 만에 연간 출생아 수가 전년보다 늘어나게 된다. 혼인 건수도 올 들어 늘어나는 추세여서 내년에도 더 많은 신생아 울음소리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뉴스1

출생아 수 증가로 3분기 합계 출산율(여성 한 명이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은 0.76명으로, 1년 전(0.71명)보다 0.05명 늘었다. 3분기 기준으로 2013년 이후 10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올해 합계 출산율도 9년 만에 처음으로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올해 합계출산율이 0.74명 안팎으로 작년(0.72명)보다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출생이 늘어난 것은 코로나로 결혼을 미루다 뒤늦게 결혼식을 올린 ‘엔데믹(풍토병화) 결혼’ 커플들이 아이를 낳기 시작한 결과라고 통계청은 분석했다. 결혼이 늘어난 만큼 출생도 늘어났다는 것이다. 혼인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9월 혼인 건수는 1년 전보다 19% 가깝게 늘어 9월 기준으로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81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내년 이후에도 출생아 증가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픽=이진영

세계 최악의 저출생이 장기화하면서 “현재 출산율로 볼 때 한국 인구는 지금의 3분의 1로 줄어들 것”(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이라는 우울한 진단까지 받았던 우리나라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2022년 8월부터 작년 3월까지 이어진 엔데믹 결혼으로 가정을 꾸린 남녀가 1~2년 시차를 두고 아이를 낳기 시작한 결과다.

◇출생 증가세 내년까지 이어질 듯

부부가 되고 첫아이를 낳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2.45년(약 2년 5개월·올해 3분기 기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엔데믹 결혼발(發) 출생아 수 증가세는 내년 하반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후에도 출생아 수 증가세가 이어질지는 올해 이후 혼인 증가세에 달렸다. 지난 9월 혼인 건수는 1만5368건으로 1년 전에 비해 18.8% 늘었다. 9월 기준으로 2019년(1만5798건) 이후 5년 만에 가장 많았고, 증가율로는 1981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다. 올해 4월 혼인 증가율이 24.6%를 기록한 이후 6개월 연속으로 혼인이 증가하면서 엔데믹 결혼 열풍으로 연간 혼인 건수가 1% 늘어난 작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결혼 증가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분기별 혼인 건수 증가율은 올해 1분기 0.4%에서 2분기 17.1%, 3분기 24%로 급증하는 추세다. 특히 3분기 혼인 증가율은 관련 통계 집계 이후 모든 분기를 통틀어 역대 최대다.

올해 혼인이 늘어난 원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1년 연속 혼인이 감소한 데 따른 기저 효과, 결혼에 대한 긍정적 인식 증가, 정부·지자체 차원의 결혼·출산 인센티브 확대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통계청의 올해 사회조사에서 ‘배우자와의 관계에 만족한다’는 기혼자는 전체 기혼자의 75.7%로, 10년 전(65.2%)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늘었다. 기혼자들의 결혼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결혼을 하는 게 좋겠다”는 응답(미혼자 포함)도 올해 52.5%로 2년 전(50.1%)에 비해 증가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결혼·출산 인센티브 쏟아낼 적기”

전문가들은 향후 1~2년이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골든 타임인 만큼, 신혼부부 주거비 지원 등 과감한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결혼·임신은 주변 친구들이 다 한다고 하면 하고, 안 하는 사람이 많으면 안 하는 식으로 ‘전염성’이 매우 높다”며 “결혼과 출생이 늘어나는 향후 1~2년 동안 더 많은 전염이 이뤄지도록 정책 역량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청년들이 결혼을 미루는 최대 요인으로 꼽는 주거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홍 교수는 말했다. 통계청의 올해 사회조사에 따르면, ‘왜 결혼을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미혼 남녀 가운데 가장 많은 32.4%가 ‘결혼 자금이 부족해서’라고 답했다. 이어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14.7%)’ ‘출산·양육이 부담돼서(12.5%)’ 등의 순이었다. 가장 원하는 결혼 지원책에 대한 설문에서도 ‘주거 지원’이 33.9%로 가장 많았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저출생은 인구 문제가 아니라 경제 문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