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진단이 잇따르는 가운데, 정부가 내는 경기 전망과 실제 경제 성적표가 따로 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출, 건설 수주, 공장 기계 출하 등 선행 지표에서는 낙관적 신호가 나온 지 1년이 됐지만, 소비, 건설 실적, 숙박·음식업 등 내수 지표를 토대로 집계하는 현재 경기 지표는 8개월 연속으로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수출 등 선행 지표마저 악화 조짐을 보이고 있어 경기가 저점을 알 수 없는 ‘L자형 장기 불황’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그래픽=양인성

◇전망과 역주행하는 경기 성적표

3일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경기 동행 지수 순환 변동치’는 지난 10월 기준 98.1로 집계됐다. 이 지표는 대표적 소비 지표인 소매 판매액 지수와 건축·토목공사 실적을 뜻하는 건설 기성, 숙박·음식업, 운수·창고업 같은 서비스업 생산 지수를 종합한 것으로, 100 이상이면 현재 경기가 좋은 편이고 100 미만이면 나쁜 편이라는 뜻이다. 순환 변동치는 이 지표가 계절적 요인을 제거한 수치라는 뜻이다. 경기가 호황인지 침체인지 공식적인 판단은 이 지표로 하고 있다.

2월만 해도 100을 조금 웃돌았던 이 지표는 지난 3월(99.8)부터 8개월 연속 100을 밑돌았다. 이 지표가 6개월 이상 100 아래로 내려갈 경우 경기 침체 신호로 해석한다. 그만큼 어두운 경기 진단이 반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작년 말부터 선행 지표가 낙관적 수치를 보였는데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 기계류 내수 출하, 건설 수주 등 지표를 토대로 향후 경기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경기 선행 지수 순환 변동치는 지난 9월 기준 100.7로 집계됐지만, 10월 동행 지수 순환 변동치는 98.1에 그쳤다.

반도체 수출 회복으로 전년 동월 대비 수출이 작년 10월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선행 지수는 그해 11월(100.1)부터 12개월 연속 100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난 2월까지는 선행 지수와 동행 지수가 모두 100 이상으로 집계됐고, 경제 관료들과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경기가 저점을 찍고 반등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나왔다.

하지만 3월부터는 전달 선행 지수가 100을 웃돌았는데도 동행 지수가 100을 밑도는 ‘희망 고문’이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이런 경우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0년 11월~2021년 11월(13개월) 이후 처음이다. 이에 정부가 발표하는 이 같은 경기 지표가 수출 증가세가 내수 회복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는 최근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행 지수와 동행 지수가 따로 노는 최근의 상황은 코로나 당시보다 심각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낙관적 선행 지수에도 동행 지수는 3~10월 8개월 연속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선행 지수가 100을 웃도는 가운데 100 미만의 동행 지수가 이렇게 긴 기간 하락한 경우는 1970년 경기 지수 집계 이후 처음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3일 ‘최근 경제 동향과 경기 판단’ 보고서에서 “동행 지수상 경기 저점을 확인할 수 없는 하강 국면이 지속 중이며, 나아가 선행 지수는 경기 하강이 지속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고 했다.

◇선행 지표에도 적신호

이런 가운데 선행 지표도 일부 악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선행 지표인 건설 수주가 6~7월 증가세를 보이면서 건설 실적(건설 기성)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왔지만, 8월부터는 건설 수주조차 전월 대비 감소세를 3개월째 이어갔다. 지난 7월 13.5%에 달했던 수출 증가세도 8월(10.9%)부터 지난달(1.4%)까지 4개월 연속 둔화했다. 향후 수출 전망도 밝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올해 연말부터 보호무역 장벽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 중국의 경기 부진이나 중동 지역 분쟁의 장기화로 글로벌 교역이 위축될 가능성, 작년 9월 말까지 이어진 수출 둔화에 따른 기저 효과가 사라진 역(逆) 기저 효과가 나타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점 등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