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나타난 고금리, 강달러 현상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 10일엔 미 노동부가 작년 12월 미국 일자리가 시장 전망인 16만명을 훌쩍 뛰어넘은 25만6000명 늘었다고 밝혔다. 이에 식지 않는 미국 고용시장에 트럼프의 감세 등 경기 부양책까지 겹치면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란 전망이 퍼졌다. 글로벌 국채 기준인 미국 10년물 금리는 순식간에 0.1%포인트 급등한 연 4.78%를 기록, 5%를 눈앞에 뒀다. 지난 20년간 이런 금리 수준은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인 2007년과 주요국 긴축과 중동전쟁이 한창이던 2023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금리가 오르면 빚 있는 기업엔 악재로 뉴욕 증시에서 다우, 나스닥, S&P500지수는 모두 1.6% 안팎 급락했다.
◇트럼프발 글로벌 고금리 오나
지난해 6월 영국 잉글랜드은행, 8월 유럽중앙은행(ECB), 9월 미국 연준이 잇따라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면서 ‘글로벌 금리 인하기’라는 인식이 퍼졌다.
하지만 그간 주요국 시중 금리는 기준금리와 거꾸로 움직였다. 미국이 지난해 기준금리를 총 1%포인트 낮추는 동안,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1%포인트 이상 올랐다. 트럼프 관세로 미국 물가가 오르고 감세로 재정 적자가 커지면 향후 미국이 국채를 더 찍어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국채 가격 하락(국채 금리 상승)을 부채질했다.
이 여파는 다른 나라에 번졌다. 영국 10년물 국채금리는 2008년 이후 최고인 연 4.83%까지 올랐다. 지난해 8월부터 영국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낮췄는데 그간 국채 금리는 0.95%포인트 뛰었다.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도 2011년 이후 최고인 연 1.21%를 기록하고 있다. ECB 금리 인하에도 유로존 금리의 기준점 역할인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는 연 2.58%로 작년 5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트럼프 효과뿐 아니라, 각국의 재정 적자 수준이 높아져 금리가 오르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글로벌 금융회사 ING가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연말에 연 5.5%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는 등 금리 상승세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 같은 주요국 채권금리 급등은 국내 은행채 금리와 주택담보대출 금리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행이 아무리 기준금리를 내려도 국내 대출 금리는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MAGA’ 환율에 주요국 난리
트럼프의 관세·감세 등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공약에 나타난 강달러도 각국 금융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작년 3월 일본은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끝냈다. 금리가 오르면 엔화 값도 같이 올라야 하는데,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34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이라도 늘어야 하는데, 일본 무역수지는 작년 7월부터 5개월 연속 적자다. 이미 많은 기업이 해외로 공장을 옮겼고 달러 수익을 일본으로 갖고 오지 않는다는 분석에, 일본에선 ‘나쁜 엔저’를 넘어 ‘슬픈 엔저’라는 말이 나온다.
중국도 분주하다. 트럼프 2기 고관세에 대응하려면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려 관세 충격을 흡수해야 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위안화가 급락하자 속도 조절을 위해 뛰고 있다. 중국인민은행은 15일 홍콩에서 역대 최대인 총 600억위안(약 12조원) 규모의 중앙은행증권을 발행해 위안화를 흡수해서 위안화 가치를 끌어올릴 예정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인민은행이 단기적으로 위안화 가치가 더 떨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명확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1997년 ‘1유로=1.17달러’로 시작한 유로화의 가치는 최근 ‘1유로=1달러’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유로화 탄생 이후 3년 정도만 빼면 1유로가 1달러보다 비쌌을 만큼 흔치 않은 일이다. 국제금융센터는 “1유로가 1달러를 밑도는 일이 현실화하면 세계 외환시장에서 환율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지난달 한국의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5.3% 떨어져, 주요국 중 러시아 루블화(-6.4%)에 이어 둘째로 통화 가치 하락 폭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