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가장 큰 리스크는 규칙에 기반한 무역 체제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대국이 힘으로 약소국을 밀어붙이는 ‘정글의 법칙’으로 돌아갈 수 있다.”
통상 문제 전문가인 윌리엄 라인시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수석고문은 본지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세계 경제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계의 관심은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새 행정부의 무역정책에 쏠려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보편 관세 적용을 위해 국가 경제 비상사태 선언을 검토하고 있다’거나 ’보편 관세를 핵심 산업에만 부과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만으로도 주가와 환율이 출렁일 만큼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미 CSIS는 미국 정치·안보 분야에서 권위 있는 자문 기관 중 하나다. 라인시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1993년부터 2001년까지 미 상무부 수출 관리 차관을 지냈다. 미국 내 수출 업체들을 대변하는 전미대외무역위원회(NFTC) 회장을 2001년부터 2016년까지 지냈고 같은 기간 미 의회의 미·중 경제안보 검토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미·중 경제정책 등의 전문가로 꼽힌다.
-많은 국가가 이미 트럼프 2기 무역 분쟁 대비에 나섰다.
“이번에는 다른 국가들이 (트럼프 1기 정부 때보다) 관세에 대해 더 잘 준비할 것으로 본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영향은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중국, 캐나다, 멕시코처럼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관세정책을 편다면 수입 업체와 제조 업체들이 관세를 피하려 다른 국가에서 자원을 조달하려 할 것이다. 다만 공급망 변경에는 시간이 걸리므로 즉각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관세’를 도입한다면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무역선 다변화 같은 변화가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보복 조치’가 예상된다. 관세를 지불하는 건 수입 업체지만 대부분의 경우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보편적인 관세는 특히 미국, 그리고 다른 국가들에서도 물가 상승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2기 미·중 관계는 어떻게 진행될까.
“트럼프 고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중국에 강경한 인사들을 행정부에 임명하고 있고, 이들은 더 광범위한 경제적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을 옹호해왔다. 동시에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중국 시진핑 주석과 거래를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과거 시도들은 성공적이지 않았고, 다시 시도한다고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낮지만 트럼프가 흥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반적인 관계는 악화될 것으로 본다. 새 행정부는 무역 외에도 남중국해, 대만 등 다른 이슈로 중국을 압박할 것이다.”
-공급망은 어떻게 바뀔까.
“서구 기업들은 이미 중국으로 인한 리스크를 줄이고 있다. 트럼프 1기 이전부터 시작됐고, 계속될 것이고, 더 강화될 것으로 본다. 단순히 트럼프 정책 때문이 아니라 중국 내 경제 상황과 중국 정부의 비중국 기업 강압 때문이다. 기업들이 반드시 중국을 완전히 떠날 필요는 없지만, 중국에서 존재감을 줄이고 다른 국가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이건 천천히 진행되지만 분명한 경향성을 갖고 있다.”
-한국에 미칠 영향은?
“관세가 중국에만 적용된다면 오히려 한국에는 혜택이 될 수 있다. 제조 업체들이 중국을 떠나 지역 내 다른 곳으로 이전하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우려는 한국에 직접 관세를 부과하거나 다른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경우다. 트럼프의 과거 행적으로 볼 때 양자 간 무역 적자가 큰 국가들에 압력을 가해왔고 한국도 이 범주에 속한다. 이는 트럼프가 한국에 추가적 무역 양보를 강요하고 관세로 압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낮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국의 대미 직접 투자를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것이다. 특히 핵심 기술 분야에서 투자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를 지속하는 것이 향후 중요한 지렛대가 될 것이다.”
-2025년 세계 경제는 어떻게 흘러갈까.
“우리는 점점 더 경제적으로 분열된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동맹국과 우호국의 무역은 증가하고, 적대국과의 무역은 감소하고 있다. 트럼프의 가장 큰 리스크는 규칙에 기반한 무역 체제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강대국이 힘으로 약소국을 밀어붙이는 ‘정글의 법칙’으로 돌아갈 수 있다.”
☞윌리엄 라인시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수석고문으로 세계 통상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현재 메릴랜드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 조교수를 맡고 있다. 미국 수출 업체 등을 대변하는 전미대외무역위원회(NFTC) 회장을 2001 ~2016년 지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상무부 차관(1993~2001년)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