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의 우리금융에 대한 고강도 감사로 우리금융의 동양생명 인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른 금융그룹과 달리 보험 계열사가 없는 우리금융은 임종룡 현 회장이 취임한 후 그룹 확장의 핵심 전략의 하나로 보험사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다.

금감원은 4일 우리금융, KB금융, NH농협금융에 대한 정기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우리금융과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졌다. 금감원은 그간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관련 부당 대출 문제를 주로 문제 삼았는데, 이날은 우리금융의 보험사 인수 계약 문제도 주요하게 지적했다.

그래픽=양인성

금감원은 검사 결과를 토대로 조만간 경영실태평가 등급을 매겨 공개할 예정인데, 관련 규정에 따르면 현재 2등급인 우리금융지주의 등급이 3등급 아래로 떨어지면 우리금융의 보험사 인수는 어려워진다. 지난해 손 전 회장 관련 부당 대출 의혹이 불거지며 시작된 우리금융에 대한 논란이 보험사 인수 문제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보험사 인수 문제 삼는 금감원, 우리금융은 ‘정상 계약’

이날 금감원은 우리금융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2334억원(101건) 규모의 부당 대출을 감행한 의혹이 있다고 밝히면서, 우리금융이 지난해 8월 중국 다자보험그룹이 소유한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 과정을 문제삼았다.

우리금융은 당시 동양생명 지분 75%와 ABL생명 지분 100%를 총 1조5493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으면서, 1년 내인 올해 8월까지 금융 당국의 인허가를 못 받는 등의 이유로 인수가 무산되면 전체 인수대금의 10%인 계약금(1549억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담았다. 그런데 금감원은 과거 우리금융이 자회사 인수 계약을 맺을 때 이 같은 계약금 몰취 조항이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박충현 금감원 부원장보는 “일을 하면서 여러 계약서를 많이 봤는데, 당사자 과실이 없는데도 제삼자 때문에 계약금을 몰취하는 조항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가간 M&A에서는 당국 승인이 불발돼도 계약금을 몰취할 수 있는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또 우리금융이 이 문제를 논의할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제대로 열지 않고, 이사회에 안건을 올렸다며 문제 삼았다. 주식매매계약을 맺은 당일 우리금융은 리스크관리위원회와 이사회를 불과 20분 간격으로 열었고, 이에 리스크관리위원회의 심의 내용이 이사회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금융 관계자는 “주식매매계약 체결 이틀 전부터 7명의 사외이사와 리스크관리위원들이 충분히 논의했다”며 “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이사들과 협의해 리스크관리위원회와 이사회 일정을 같은 날로 정했다”고 밝혔다.

◇부당대출 2334억원, “내부통제 작동 안해”

우리금융 검사의 도화선이 됐던 손 전 회장 관련 부당 대출 규모는 당초 350억원보다 380억원 늘어난 730억원으로, 이 중 46.3%인 338억원은 부실화됐다고 금감원은 밝혔다. 부당 대출 가운데 451억원은 임종룡 현 회장 취임 이후 신규 취급됐다고 했다. 회장이 바뀐 후에도 부당 대출이 걸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내부통제를 비용적 요소로만 인식하고,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에도 순응하는 조직문화로 인해 내부통제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날 발표된 금감원의 검사 결과가 그대로 인정되면 우리금융이 추진 중인 동양·ABL생명 인수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금융지주회사 감독 규정’에 따르면 금감원이 정기검사를 바탕으로 도출하는 경영실태평가 등급이 2등급 이상이어야 자회사 인수가 가능하다. 금감원은 통상 정기검사 후 1년이 지나야 경영실태평가를 내놓지만,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달 내에 우리금융에 대한 경영실태평가를 금융위원회에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경영실태평가가 3등급 이하여도 인수가 완전히 무산되는 것은 아니다. 최종 승인 여부는 금감원의 상급 기관인 금융위가 결정하는데, 우리금융이 자본금을 증액하거나 부실 자산을 정리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일정 요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하면 인수를 허락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해서 1500억원이 넘는 돈을 중국 보험사에 넘겨줄 경우 국부 유출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대대적으로 공개한 금감원의 행보가 이례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