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여 채에 달하는 지방 미분양 주택에 대한 DSR(총부채 원리금 상환액 비율)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해달라는 여당의 압박에 금융당국이 난처한 입장에 놓였다. 금융당국은 표면적으로는 가계부채 관리 강화라는 정책 기조의 일관성을 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여당 요구에 따라 실제 DSR 규제를 풀어도 실제 미분양 해소 효과는 미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대구의 한 아파트에 "1억 이상 파격 할인"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국민의힘은 지난 4일 ‘경제분야 민생대책 점검 당정협의회’에서 수도권 이외 지역 미분양 주택에 대한 DSR 규제 한시적 완화를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에 요청했다. DSR은 대출을 끼고 주택을 구입한 개인의 연간 원리금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비율이다. 주택 구입자가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빌리라는 취지의 소득 심사 지표다. 전통적인 소득 심사 지표인 총부채 상환 비율(DTI)이 신용대출 등 주택담보대출 이외의 대출은 이자 상환액만 따지는 반면, DSR은 모든 대출의 원금 상환액과 이자 상환액을 따진다. 대출 승인을 위한 DSR 심사 기준도 40% 이하로 60% 이하인 DTI보다 엄격하다. 또 원리금을 계산할 때 주택 구입자가 실제 은행에서 빌린 금리가 아닌, 금융당국이 정한 가산금리를 더한 ‘스트레스 금리’를 적용한다.

여당은 악성 미분양으로 신음하는 지역들의 분양 숨통을 틔워주려 DSR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금융위는 즉답을 피하고 있다. 금융위는 5일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지방 미분양 주택에 대한 DSR 한시 규제 완화 요청에 대해서는 DSR 한시 완화의 필요성, 타당성, 실효성, 정책의 일관성 등 점검해야 하는 사항이 많으므로, 이에 대해 신중히 고려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특히 금융위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대목은 ‘실효성’이다. 6억원 이하 주택 구입자는 시중 은행 대출에 비해 금리 조건이 좋은 보금자리론, 4억원 이하는 대출 금리가 연 2%대까지 내려가는 디딤돌대출 등 정부의 정책 모기지 상품을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정부 대출 상품은 DSR을 아예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미분양 주택이 가장 많이 쏟아진 대구(2674가구)의 지난달 아파트 평균 가격은 3억4121억원이다. 대구 다음으로 미분양이 많이 쌓인 경북(2237가구), 전남(2450가구)의 평균 아파트 가격은 각각 1억9236억원, 1억9281억원으로 2억원도 안 된다. 여당 주문대로 DSR 규제를 한시적으로 풀어줄 경우 이 지역에서 매매가가 6억원을 초과하는 지방 고가 주택 구입하면서 KB국민은행이나 신한은행 등 시중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사람들만 팍팍한 소득 심사를 면제받는 혜택을 보게 된다.

‘필요성’도 금융당국이 신중론을 고수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엄격한 대출 규제가 악성 미분양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면 DSR 한시적 완화가 미분양 해소에 일조할 수 있다. 하지만 수도권 이외 지역 주택 구입자는 보금자리론과 디딤돌대출 등 정책 모기지를 받을 때 DTI 심사도 받지 않는다. 소득 심사 때문에 대출이 막혀 미분양이 쌓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기준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만1480가구로 전월 대비 15.2% 늘었다. 2014년 7월 이후 10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2만가구를 넘어섰다.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2023년 8월부터 17개월째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