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2022년 게임 회사 위메이드에서 10억원 상당의 코인을 기부받았다. 그런데 대학 법인은 코인 거래를 할 수 없도록 한 금융 당국의 방침 때문에 지금까지 이를 현금화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서울대는 이 코인을 팔아 법인 계좌에 현금으로 입금할 수 있게 된다.
13일 금융위원회는 제3차 가상 자산위원회를 열고, 4월부터 지정기부금단체(특정 목적으로 사용될 기부금을 받는 단체), 대학 같은 비영리법인, 가상 자산 거래소 등이 코인을 팔아 현금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등 법인에 대해 가상 자산 투자를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개인만 가상 자산 거래가 가능했지만, 법인에도 코인 거래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법인의 코인 거래가 허용되는 것은 법인 코인 계좌 개설을 사실상 금지한 2017년 이후 8년 만이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삼성전자, 현대차 등 상장 법인도 코인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이 본격적으로 코인 거래에 나설 경우, 가상 자산 시장에 유동성(돈)이 늘어나고 이런 자금을 유치하기 위한 국내 가상 자산 거래소 간 경쟁도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금융회사, 자산운용사, 사모펀드 등 금융 관련 법인의 코인 거래는 당분간 허용하지 않는다. 김 부위원장은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단계적·점진적 허용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비트코인 기부금도 현금화 가능
현재 서울대, 고려대, 서강대, 동서대 등 4개 대학은 약 60억원의 코인을 기부받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는 지금까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코인을 팔아 현금으로 쓰려면 가상 자산 거래소에 실명 계좌가 있어야 하는데, 정부는 자금 세탁 위험이 크다는 등의 이유로 법인이 가상 자산 거래 실명 계좌를 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앞으로 단계적으로 법인의 코인 투자를 허용하기로 했다. 상당수 국가가 법인의 가상 자산 투자를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있고, 국내 가상 자산 관련 신사업 수요가 증가하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다.
우선 4월부터 비영리법인 중 지정기부금단체, 대학 등이 실명 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이들이 이 계좌로 갖고 있는 코인을 팔 수는 있지만 투자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 업비트·빗썸 같은 가상 자산 거래소가 각종 수수료 명목으로 받는 코인도 현금화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 1위 코인 거래소 업비트는 지난해 3분기에만 수수료 수입으로 약 1822억원 상당의 코인을 거둬들였다. 다만 이런 자금은 모두 인건비, 세금 납부 등 경상비로만 써야 한다.
◇삼성전자·현대차, 코인 투자도 가능해져
올해 하반기부터는 삼성전자, 현대차처럼 자본시장법상 전문 투자자로 분류된 상장사와 전문 투자자로 등록한 법인의 코인 투자도 허용한다. 금융 투자 상품 잔액인 100억원 이상인 기업이 이에 해당한다. 다만 4대 금융 지주 등 금융회사, 자산운용사, 사모펀드, 기금 같은 각종 금융 관련 법인은 제외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코인 투자가 가능한 법인은 3500여 개(상장사 2500여 개)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한국판 스트래티지’가 등장할 수 있게 됐다. ‘스트래티지’는 소프트웨어 서비스 기업이지만 세계에서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한 미 나스닥 상장 기업이다.
정부는 금융회사 등의 가상 자산 투자 허용 여부는 장기 과제로 남겼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회사는 가상 자산 투자에 따른 위험이 금융 시스템 전체로 옮겨갈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금융회사가 가상 자산을 보유할 수 없으면 ETF(상장지수펀드) 등을 운용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관심을 끌었던 가상 자산 현물 ETF의 국내 도입도 같이 미뤄지게 됐다.
이날 정부 방침에 코인 업체들은 환영했다. 업비트 관계자는 “정부가 발표한 법인 계좌 로드맵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코인 시장에 지나치게 많은 자금이 밀려들면서 시장이 과열되고 국내 증시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가격 변동성이나 리스크가 지나치게 큰 가상 자산 거래는 제한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