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취임한 정진완 우리은행장이 최근 우리은행의 팀장급 이상 간부에게 2주 이상 길게 가는 휴가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상은 상무 이상 임원 24명과 본점 부서장 100여 명, 본점 관리자급 이상 팀장 260여 명 등 총 300여 명이다.

19일 우리은행 등에 따르면 정 행장이 긴 휴가를 권장한 것은 직원의 휴식 보장 외에도 각종 리스크를 점검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부서장, 팀장 등 리더가 자리를 비워도 조직이 문제 없이 돌아가는지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리더가 휴가를 길게 가면 해당 리더의 업무가 과하지 않은지, 문제가 없는지 확인할 수 있다”며 “리더가 2주 동안 자리를 비웠다고 버티지 못하는 조직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휴가를 통해 각종 비리가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목적도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부적정 대출 등 각종 사건 사고로 곤욕을 치렀고, 2010년대에는 한 직원이 5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빼돌렸다 적발된 바 있다. 긴 휴가로 자리를 비우면 비리가 있는지도 철저히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의 팀장급 이상은 막대한 자금을 취급하는데, 보통 이들이 자리를 비우는 첫날에 이들에 대한 감사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긴 기간 떠나는 휴가를 ‘블록 리브(Block Leave)’라고 한다. 외국 금융사들 가운데는 의무적으로 블록 리브를 시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내에 지점을 둔 외국계 은행 A사의 경우 외환 업무나 자금 출납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에게는 반드시 보름 이상 휴가를 가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 기간에는 아예 회사 업무망에 접속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직접 돈을 굴리는 직원들을 업무에서 배제해 놓고, 꼼꼼히 감사해 비리를 밝힌다는 목적이 크다”고 말했다.

블록 리브에 대한 금융권 직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길게 해외여행을 떠날 기회라는 의견도 있지만, 휴가를 짧게 끊어 쉬는 자유를 빼앗는다는 불만도 나온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권고라서 강제성은 없다”면서도 “2분기부터 본점 간부들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한 뒤, 지점장급 간부까지 확대할지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