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관세 도입 등을 핵심으로 하는 트럼프노믹스가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미국에서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가 강해지며 소비 심리가 가라앉고 있다. 이로 인한 기업 실적 하락 우려도 커지자 미국 주식 시장이 휘청거리고 있다. 영국의 외환 관련 금융 업체 볼링어 그룹의 카일 채프먼 분석가는 “트럼프 비즈니스의 허니문은 끝난 것 같다”는 분석까지 내놨다.

지난 21일 뉴욕 주식시장에서 다우평균은 1.69% 떨어졌다. 올 들어 가장 큰 낙폭이다. S&P500과 나스닥 지수도 1.71%, 2.2%씩 크게 떨어졌다. 특히 트럼프 2기 탄생에 공이 많은 일론 머스크 CEO(최고경영자)의 테슬라 주가는 4.68% 내린 337.80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18일 최고치(488.54달러)보다 31%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엔비디아(-4.05%), 브로드컴(-3.56%) 등 주요 기업 주가도 급락했다. 로이터통신은 “수입 관세와 연방 정부 지출 삭감이라는 악재 탓에 이달 들어 미국 기업의 활동이 거의 정체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 이후 거뒀던 (주가) 상승세를 거의 다 까먹었다”고 했다.

◇물가 오를 것이라는 미국민, 소비 줄여

이날 주가 하락의 배경에는 다시 오르는 물가와 그로 인해 악화하는 소비 심리 지표 탓이 크다. 미국 소비자물가는 2년 반 가까이 4%가 넘는 고금리 덕에 힘입어 지난해 2%대로 떨어졌는데,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다시 3%대로 올랐다. 특히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 비용을 제외한 핵심 소비자물가 지수는 5.5%나 올랐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지금은 바이든 행정부 초기 이후 인플레이션 정책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말했다.

그래픽=양인성

더 큰 문제는 소비자들이 앞으로 물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고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 미시간대가 집계하는 지난달 미국의 1년 후 기대 인플레이션은 4.3%로 전월(3.3%)보다 1%포인트 올랐다. 5년 후 기대 인플레이션도 연간 3.5%로 전월 대비 0.3%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래픽=양인성

물가 상승 우려에 소비 심리도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2월 미시간대 소비자심리 지수는 1월보다 10% 가까이 떨어진 64.7로 집계됐다. 2023년 11월 가장 낮은 수치다. 이 수치가 100 아래면 향후 소비가 위축될 것을 뜻한다.

그래픽=양인성

기업들도 경기가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미 공급관리협회(ISM)의 2월 미국 서비스업 구매관리자 지수(PMI)는 49.7로, 2023년 1월 이후 25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PMI는 기업 심리 지수로, 50보다 낮으면 경기 수축을 뜻한다.

◇“트럼프 낙관론 꺾이고 있다”

각종 미국 경제지표가 식어가는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가 자리 잡고 있다. 트럼프는 일단 시행을 연기하기는 했지만 취임하자마자 멕시코·캐나다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철강·반도체·자동차 등에 대한 관세 부과를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관세를 높이면 당장은 수입 가격이 상승한다. 이에 미국 소비자와 기업들이 물가 상승과 경기 위축 우려를 크게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시사 주간지 US뉴스&월드리포트는 “미국 기업들이 트럼프의 복귀를 반갑게 맞이했지만, 최근 들어 낙관론의 일부가 꺾이고 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도 “트럼프의 ‘상호 관세’가 미국 경제에 불확실성을 키우고, 인플레이션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 공화당 출신 미치 매코널 전 상원 원내대표는 지역구인 켄터키주 언론에 “트럼프의 관세로 평균 켄터키 주민이 연간 최대 1200달러의 비용을 더 내야 한다는 추정이 있다”며 “트럼프의 공격적인 정책은 미국 산업과 노동자들에게 크고 오래 남는 우려를 남긴다”고 하기도 했다.

고물가에 저성장이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도 나온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따르면 내년 중 미국이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을 것으로 예상하는 펀드매니저 비율이 60% 가까이 되면서 7개월 만에 최고로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