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 조(兆) 단위 수출을 포함해 7조원 이상 매출을 올린 국산 K2 전차는 전차의 3요소인 ‘화력(화포)’ ‘기동력(엔진)’ ‘방호력(장갑·裝甲)’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화포는 현대위아, 엔진은 HD현대인프라코어라는 쟁쟁한 방산 대기업이 생산한다. 반면 방호력의 핵심인 장갑은 한 중소기업이 맡고 있다. ‘삼양컴텍’, 이름은 생소하지만 1970년대부터 50년 넘게 방탄 제품을 생산한 숨은 강자다.
삼양컴텍은 2009년부터 17년째 K2 전차를 생산하는 현대로템에 방탄 장갑을 독점 공급하는 방탄 분야의 대표 방산 중소기업이다. 방탄 장갑은 각종 무기와 장비에 덧대 포탄이나 미사일 등 적의 공격을 버텨내는 역할을 하는 방호 구조물이다. 중동 복수 국가와 폴란드에 수출한 다연장 로켓 천무, 이라크에 수출한 수리온 헬기에 들어가는 방탄 제품도 삼양컴텍이 제조한다. 이 회사의 방탄 장갑 국산화 기술이 없었다면 K2 전차 1000대 수출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난달 13일 경북 구미에 있는 중소기업 삼양컴텍 공장. 내부에 들어서니 직원들이 4m 높이의 원통형 설비 10여 개 안으로 모래알보다 작은 흰색 가루를 부어 넣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가루는 실리콘과 탄소에 열을 가해 만드는 탄화규소로, 각종 무기나 차량 등에 장착하는 방탄 장갑의 핵심 원료다. 수천 도 열에도 쉽게 녹지 않고 강철보다 강도가 높은데 더 가벼운 특성이 있다. 이 장비 안에 들어간 탄화규소는 2000도가량의 고온을 가했다가 식히는 과정을 반복하고, 100t 이상의 압력으로 압축해 A4 용지 한 묶음만 한 직육면체 ‘중(重)방탄 세라믹’으로 재탄생한다.
◇쌀알만 한 세라믹 가루도 기밀
이 세라믹 타일 300여 개를 이어 붙여 K방산 대표 무기인 K2 전차의 특수 방탄 장갑을 만든다. 전시에 생명과 직결되는 특수 방탄 장갑은 모든 국가, 모든 기업에서 기밀로 유지된다. 1980년대 후반부터 기술 이전을 통해 미국 기업이 설계하고 국내에서 생산한 K1 전차도 방탄 장갑은 100% 수입했다. 당시 미국 기술자들은 한국 생산 공장에서 칸막이를 치고 방탄 장갑을 직접 전차에 넣고 봉인할 정도로 꼭꼭 숨긴 기술이었다. K1 전차가 야전에서 작전 중 파손돼 내부 장갑재가 드러나면 진흙이라도 발라서 소재 구성 단면을 가리고 수리를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2000년대 초 국방과학연구소(ADD)가 K2 전차 기술 국산화를 할 때, 전차용 방탄 장갑을 이 회사에 맡겼다. 삼양컴텍 김종일(72) 대표는 “전차는 최전선에서 돌격하는 핵심 병력이라 근거리 공격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방탄 장갑이 핵심 부품”이라며 “차량이나 병사용 방탄 장비를 만들다가 아무런 힌트 하나 없이 탱크 장갑을 만들어야 하니 막막한 심정이었다”고 했다.
중소기업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ADD나 현대로템이 요구하는 방탄 강도(强度)를 맞추기 위해 실험실에서 7년간 소규모 배합 실험 수천 번과 양산 설비를 동원해 200여 차례 치른 파일럿 실증에서 실패를 겪고, 부족한 자금·인력난과도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 40여 명 R&D(연구·개발) 팀은 이 시간 내내 완벽한 ‘조합’을 찾아내기 위해 매달렸다.
탄화규소 같은 원료와 보안상 밝힐 수 없는 화합물들을 어떤 비율로 섞어서, 어떤 온도와 압력을 가할 것인지 등에 따라 완성되는 세라믹의 강도나 밀도가 천차만별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2000도 이상 고온에서 원료를 수십 시간 가열해 세라믹을 만드는데 적정 온도와 시간에서 20~30도, 10~20분만 벗어나도 불량품이 되기 일쑤였다. 또 사전 한 권 두께의 세라믹 타일 모든 곳의 밀도를 똑같이 맞추는 것도 난관이었다. 밀도가 고르지 않으면 세라믹 타일 내부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공기층이 생기는데, 외부 충격을 받으면 이 공기층을 시작으로 균열이 생겨 전체 방탄 장갑이 쉽게 파괴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세라믹 제작 기술은 K방산의 극비 중의 극비가 됐다. 업계에선 경쟁 제품인 미국 에이브럼스나 독일 레오파르트 전차에 사용되는 최고 수준의 장갑과 견줄 만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 수준의 방탄 장갑을 자체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외에 미국과 독일, 프랑스 정도뿐이다. 제조·가공 과정에서 나오는 쌀알만 한 세라믹 조각도 모두 분쇄하고 특수 폐기 처리해 외부로 유출되지 않게 한다. 미세한 가루만으로도 세라믹 배합법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K2가 2022년 폴란드 수출 등으로 해외로 진출하면서, 2021년 530억원이었던 이 회사 매출은 작년 1410억원으로 3년 새 2배 이상이 됐다.
◇방산 중기의 한계 넘어라
중소기업으로 맞닥뜨린 난관도 많았다. K2 수출이 늘면서 생산량을 단기간에 대폭 늘려야 했던 2021~2023년이 가장 큰 고비였다. 당시 현대로템은 이 회사에 납품 물량을 기존의 5배 이상으로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이를 맞추려면 500억원의 투자가 필요했다. 김 대표는 “당시 연매출 500억원대 회사에 대규모 투자는 결코 쉽지 않았다”고 했다.
인력을 구하는 것도 문제였다. 기존 경기도 광주 공장의 숙련공들을 수백㎞ 떨어진 곳으로 파견하려니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직원이 많았고, 구미에서 겨우 채용한 인력도 금방 나가는 경우가 잦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장 근처에 숙소를 마련해 세끼 식사를 줬고, 이주한 직원들에게는 매달 20만원씩 교통비를 줬다. 직원들을 위해 월급과 별도로 월 30만~50만원의 적금도 회삿돈으로 부어줬다. 그렇게 220명의 귀한 인력을 추가로 늘려 520명짜리 회사가 됐다. 김 대표는 “지금은 차세대 한국 전차의 방탄 장갑에 쓸 신소재를 개발하고 있다”면서 “오리가 물 밑에서 열심히 발길질하듯 남들 눈에 띄진 않지만 당당한 K방산의 일원으로 글로벌 강자 자리를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특수 방탄 장갑(裝甲)
장갑은 적의 탄환·포탄·미사일 등으로부터 전차나 함선, 항공기 등 내부의 병력과 장비를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구조물이다. 특수 장갑이란 필요시 차체 외부에 탈부착할 수 있는 부가 장갑과 달리 차체에 내장되는 장갑으로 전차의 방호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