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약진하던 미국 달러가 최근 약세다. 유로, 엔화 등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의미하는 달러 인덱스는 작년 11월 5일 미 대선일 이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전까지 6%가량 급등했는데,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한 50여 일이 지난 10일 미국 대선일 수준으로 되돌아왔다.

이에 다른 통화의 가치도 속속 원상 회복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 원화는 예외로 ‘외톨이’ 신세다. 1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452.3원에 마감(오후 3시 30분 기준)했다. 미 대선일보다 여전히 5.5% 높다. 원화 가치가 다른 통화보다 관세 전쟁에 민감할뿐더러, 한국의 경제 체력이 현저히 약화돼 뚜렷한 반등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미국, 침체 우려에 약달러

그간 미 달러는 대표적인 ‘트럼프 트레이드(트럼프 정책의 수혜 자산에 투자)’ 자산으로 꼽혔다. 트럼프의 ‘보편 관세’ 구상이 실현되면 수입 물가 상승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들며, 미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리지 못하고 심지어 인상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달러 가치는 올라갈 거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와 유예 사이에서 오락가락한 것이 불확실성을 증폭시켜 달러 약세론이 고개를 들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진단했다.

여기에 최근 경제 지표가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을 가리키면서 달러 약세 기조를 부추긴다. 7일 발표된 미국의 2월 실업률은 4.1%로 전월(4%)보다 올랐다. 1월 개인소비지출은 전월 대비 0.2% 감소해 2021년 2월(-0.6%) 이후 4년 만에 가장 크게 감소했다.

그래픽=양인성

성장세가 뒷받침되지 않는 약달러는 미국의 수입 물가만 올려 트럼프의 정치 지지 기반을 갉아먹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침체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9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올해 경기 침체를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하려는 일은 부(富)를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는 매우 중요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과도기를 거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세 기간 자신의 정책이 미국 경제에 급속한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했던 태도와 다른 모습이라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한국 원화도 약세 장기화

달러 약세에 따라 거꾸로 다른 주요국 환율은 미 대선 이전으로 복귀하고 있다. 달러 대비 유로 환율은 미 대선 이전 수준(0.92유로)으로 복귀했다. 엔화 환율은 미 대선 때(152엔)보다 더 떨어진 147엔 수준이다. 위안화 환율은 미 대선 전 7.1위안 수준이었는데, 1월 7.33위안까지 갔다가 현재 7.25위안 수준으로 내려왔다. 위안화 정도만 미 대선 전보다 2% 정도 가치가 떨어져 있는 셈이다.

반면 원화 환율은 미 대선 전과 비교해 달러당 70~80원 정도 올랐다(가치 하락). 이 중 20원 정도가 계엄 사태로 인한 불안정성 때문이라는 한국은행의 추산을 감안하면, 여전히 가치 하락세가 심하다.

전문가들은 원화는 관세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골드만삭스는 한국에 대해 “아시아 역내 선진국과 신흥국 중에서 미국의 관세 부과 위험에 크게 노출된 국가 중 하나”라고 평가하면서 미국이 10% 상호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 국내총생산(GDP)이 0.7%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다른 통화와 달리 원화는 뚜렷한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유로존은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대규모 재정 부양책을 발표하면서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하고 있다. 독일 경기 부양으로 유럽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폭은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 유로화 가치를 밀어올리고 있다. 일본의 경우 금리 인상 관측이 높아지면서 10년물 국채 금리가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글로벌 투자 자금이 일본으로 향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현재 원화 환율에는 그동안 체질 개선을 하지 못한 한국 경제의 문제점이 모두 반영되어 있다”며 “기업 부실, 자영업자 부실 때문에 장기적으로 정부가 돈을 풀 수밖에 없어, 환율이 급격하게 내려오기 힘들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