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률 2.1%→1.7%, 물가 상승률 2.5%→2.7%, 실업률 4.3%→4.4%.'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올해 미국 경제 전망치를 직전 12월 내놓은 전망치보다 확 깎아내렸다. 최근 3년 동안 2% 중·후반대 준수한 성장을 하던 미국 경제 성장세가 1%대로 미끄러지고, 물가·실업률은 다시 상승한다고 본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의 경제 전망이 트럼프 취임 이후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트럼프발 관세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 가능성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물가 상승 효과가 ‘일시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와 정면 대결하는 일은 피한 것이다.
◇연준, 미 성장률 전망 끌어내려
19일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 금리를 연 4.25~4.5%로 동결했다. 시장 예상과 같았다. 이날 전문가들은 연준의 경제 전망과 파월 의장의 발언에 더 주목했다. 파월은 이날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관세에 대한 반응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연준은 정책 결정문에 “경제 전망 불확실성이 증대됐다”는 문구를 새로 넣었다. 이전까지 있던 “물가와 고용 안정이라는 연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리스크가 대체로 균형 잡혀 있다”는 문구는 삭제했다.
성장률을 낮추고, 물가 상승률은 올린 연준의 전망에 대해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스태그플레이션(불황인데도 물가가 계속 오르는 현상)에 대한 연준의 경계감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WSJ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연준이 올해 경기 침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기 더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파월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는 선을 그었다.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현재 우리는 실업률이 완전고용에 근접한 4.1%를 유지하는 동안에도 인플레이션이 2%에 가깝게 둔화하는 상황에 있다”며 “우리가 (1970년대의) 그런 상황에 직면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관세 인플레이션, 일시적일 수도”
미국 경제 전망을 확 낮추면서도 이날 FOMC는 연내 두 차례 기준 금리를 인하한다는 기존 전망을 유지했다. 최근 바클리 등 일부 투자은행은 연준이 관세 인플레이션 상승 전망을 반영해 올해 금리를 한 차례만 내릴 수 있다고 봤지만, 연준은 기존 전망을 고수했다.
파월 의장은 트럼프 관세 우려에도 불구하고 연내 금리 인하 전망을 유지한 배경에 대해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 영향이 ‘일시적(transitory)’이라는 게 기본 시나리오”라고 했다. 그는 “저절로 사라질 인플레이션이라면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정책이 효과를 낼 때쯤 경제 활동과 고용을 둔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파월이 사용한 ‘일시적’이라는 단어는 당장 파월의 ‘흑역사’를 소환했다. 파월 의장은 2021년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미국 물가가 오를 조짐을 보이자 공급망 교란 등으로 인한 ‘일시적’ 상승이라고 표현했다가 금리 인상 시기를 놓치고, 이듬해 네 번 연속 0.75%포인트씩 금리를 급격하게 올려 글로벌 금융시장을 충격에 빠뜨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시적’이란 표현에 트럼프 진영은 반색했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파월이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있다 하더라도, 그 효과가 일시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파월 기자회견 후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기세를 올렸다. 월가에선 당장 파월이 관세 인플레이션 후폭풍을 축소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LH메이어의 이코노미스트 데렉 탕은 블룸버그에 “파월은 연준이 백악관의 십자포화를 맞길 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한은 금리 인하 연내 1~2번 그칠 듯
연준이 1월에 이어 3월에도 금리를 동결하자,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입지는 상대적으로 쪼그라들었다. 연준의 동결로 한국(2.75%)과 미국(4.25~4.50%)의 기준 금리 차이가 1.75%포인트로 유지된 상황에서 한은이 추가로 금리를 낮추면 기준 금리 차이가 2%포인트로 벌어진다. 1450원대로 여전히 높은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미국과 금리 격차가 커질수록 더 뛸 위험이 있고, 외국인 자금 유출 압력도 커진다.
연초 집값과 가계 부채가 다시 들썩이면서 금리 인하 걸림돌이 늘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2월을 포함해 올해 2∼3회 기준 금리가 인하될 것이라는 시장 전망이 (한은) 금통위의 가정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현재 상황이라면, 한은의 금리 인하 횟수가 연내 1~2차례 정도만 남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