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A씨는 60대 부모가 운전자보험료로 월 10만원을 낸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운전자보험은 주로 교통사고 처리 지원금(형사 합의금), 변호사 선임비, 벌금 비용 등 형사적 책임에 따른 비용을 보장한다. 자동차보험과 달리 의무 가입할 필요는 없지만, 스쿨존 내 어린이 상해·사망 사고 처벌을 강화한 이른바 ‘민식이법’ 시행 이후 필수 보험으로 인식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보험 가입자 2500여 만명 중 5명에 한 명꼴로 가입하고 있다고 한다. 운전자들은 통상 월 보험료 1만원 내외로 가입한다.

보험 증권을 살펴보니 A씨 부모는 ‘운전자 상해보험’이란 이름으로, 운전자보험과 더불어 상해와 일부 질병까지 보장하는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었다. A씨는 “아버지가 ‘운전자보험을 들고 싶다고 했더니 설계사가 간병인 일당도 주고, 전신 마취 수술 시에도 보험금이 나온다고 해서 갈아탔다’고 했다”고 했다.

◇부모는 10만원, 자식은 800원

반면 A씨는 운전자보험료로 월 800원을 내고 있다. 부모 한 사람당 보험료의 62분의 1 수준이다. A씨는 보험사 모바일 앱에서 ‘형사 합의금 2억원, 변호사 비용 5000만원, 벌금 비용 3000만원’ 등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보장만 넣어 보험료를 기존 월 1만2500원에서 월 800원으로 확 줄였다.

모바일로 손쉽게 보험을 가입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세대별로 보험료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운전자보험은 보장 내역이 간단하고 온라인에서 보험사별 비교가 쉬운 편이기 때문에, 설계사를 통한 가입과 모바일 가입의 보험료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픽=양인성

실제로 모바일로만 가입을 받는 카카오페이손해보험 운전자보험은 가입자 중 2030 세대 비율이 62%로 절반 이상이다. 카카오페이손보 관계자는 “가입자들의 월평균 보험료 중 가장 높은 구간이 7000원으로, 매달 1만원이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인공관절·간병인 보장’ 미끼

하지만 대면 가입을 선호하는 5060 세대의 경우 운전자보험 기능이 추가된 상해보험을 보장 내역을 잘 따지지 않은 채 드는 사례가 잦다. 주로 ‘운전자 상해보험’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종합보험들은 이런저런 보장이 덧붙여져 월 보험료가 수만 원씩으로 높아진다. 보장 범위가 넓을수록 보험료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중년 이상 운전자들이 선호할 만한 ‘인공관절 치환술’, ‘간병인 지원’ 같은 특약을 일부 설계사가 미끼로 쓰기도 한다. 한 50대 가입자는 “‘운전자보험도 되고 나중에 인공관절 수술을 할 때도 보험금이 나온다’는 말에 혹했다”며 “나중에 보니 정작 형사 합의금 보장은 3000만원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상해보험에 운전자보험 특약을 끼워 넣어 파니, 정작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도 가입하는 촌극도 생긴다. “자녀의 상해보험도 같이 들 수 있다”며 운전자 상해보험에서 운전자보험만 뺀 ‘이름만 운전자보험’도 가능한 셈이다.

설계사뿐 아니라 DB손해보험·현대해상·KB손해보험·메리츠화재 등 주요 손보사들이 자사 홈페이지의 ‘운전자보험’ 탭에서 상해 보장이 주 계약이고 운전자 보장 내역은 특약으로 들어가 있는 상품을 팔고 있다.

◇전갈 접촉·골프채 보상 ‘별별 특약’

보험 전문가들은 엉뚱한 보장만 빼도 매달 보험료 고정 지출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국내 한 보험사의 운전자 상해보험은 강력 범죄로 사망했을 때 ‘강력 범죄 피해 보험금’을 주고, 주택 누수 등이 생겼을 때 보험금을 주는 ‘가족 일상 생활 배상 책임’ 보장 등이 있는데 이 두 개만 동의해도 월 보험료 2만원이 추가된다.

뱀, 전갈, 거미, 해파리 같은 동물을 만지고 병원 진단을 받으면 보험금을 주는 ‘독액성 동물 접촉 중독 진단비’, 골프장에서 연습이나 경기 도중 골프채가 망가지면 보험금을 주는 ‘골프용품 손해 보험금’ 같은 특약 항목들도 운전자보험 명목으로 팔리고 있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운전자보험을 새로 들지 않고 갖고 있는 종합보험이나 자동차보험에서 운전자 보험을 보장하는 특약을 넣는 것도 보험료를 아끼는 방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