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법원에 기습적으로 기업 회생을 신청해 자금이 묶이게 된 투자자와 협력업체의 원성을 사고 있는 홈플러스가 자신들의 신용 등급이 강등(‘A3’→‘A3-‘)될 것을 사전에 알고 법원에 기업 회생 신청을 준비한 정황을 금융감독원이 포착했다고 1일 밝혔다. 홈플러스를 대행해 채권을 판매한 증권사들은 이날 홈플러스와 경영진을 신용 등급 강등을 알고도 채권을 발행했다며 사기죄로 고소하고, 일부 투자자는 홈플러스뿐만 아니라 홈플러스 소유주인 사모펀드 MBK 파트너스(이하 MBK) 김병주 회장도 사기죄로 고소하는 등 홈플러스 사태가 소송전으로 치닫고 있다.

항의하는 채권 피해자들 홈플러스 물품 구매 전단채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달 25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의 사재 출연과 상거래 채권 즉시 반환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사기’에 ‘부정 회계’까지 언급한 금감원

함용일 금감원 자본시장 담당 부원장은 1일 브리핑에서 “검사 결과 신용 평가 등급이 떨어질 가능성이나 기업회생 신청 경위 등에 대해 그동안 MBK와 홈플러스가 해온 해명과 다른 정황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간 홈플러스는 지난 2월 28일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 사실을 통보받고 정식으로 공시되자 기업회생 신청을 준비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홈플러스는 2월 25일 하루 동안 820억원에 달하는 채권을 국내 증권사들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판매했다. 이와 관련, 금감원은 “신용 등급 강등 사실을 이전에 인지했음에도 이를 속이고 사기 판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밝혔다.

홈플러스는 단기 운용 자금 조달 등을 위해 받을 카드 대금을 기초로 한 단기사채(ABSTB)를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팔았는데, 신용 등급 강등 통보를 받은 2월에는 월별 기준으로 가장 많은 규모인 1518억원의 ASBTB를 팔았다. 특히 신용평가사 직원이 비공식적으로 홈플러스에 강등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진 2월 25일에는 이 중 절반이 넘는 820억원을 판매했다. 투자자들은 “신용 등급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홈플러스와 채권 발행 증권사들이 사기를 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이날 “(신용 강등 사실을 알고 채권을 판) 혐의가 확정되면 사기적 부정 거래가 성립할 수 있다. 형사처벌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양인성

금감원은 또 여론이 악화하자 홈플러스가 지난달 ABSTB 등 금융채권을 정상 변제가 가능한 상거래채권으로 인정해 갚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거짓말’이라며 비판했다. 홈플러스가 회생 절차에 돌입하면서 금융채무는 동결됐지만, 상거래채권은 변제가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26일 “시장에서는 (금융채권을) 상거래채권으로 취급하겠다는 것은 빠른 시간 안에 변제해주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데, 재원이나 변제 시기에 대한 약속이 없다면 사실상 거짓말에 가깝다”고 말한 바 있다. 함 부원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변제 시기나 우선순위 등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협력사와 입점 업체들의 불안감이 지속되고 있다. (MBK와 홈플러스가) 모호한 변론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금감원은 홈플러스가 회계 처리를 하면서 기준을 위반했을 가능성을 포착하고, 최근 회계 감리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감리는 회계 심사를 하다가 분식(粉飾) 회계 등 위반 혐의가 발견되면 착수하는 강제성 있는 조치다. 거의 모든 장부를 샅샅이 조사하기 때문에 홈플러스의 각종 회계상 문제점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 관계자는 “장부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중과실 정도의 위반 가능성이 큰 항목이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들 “사기당했다” 홈플러스 고소

이와 함께 홈플러스의 의뢰를 받아 채권을 발행·판매한 신영증권, 하나증권, 현대차증권, 유진투자증권 등 국내 4개 증권사는 이날 홈플러스와 홈플러스 경영진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들은 고소 대상으로 김광일 MBK 부회장 겸 홈플러스 공동대표, 조주연 홈플러스 대표 등을 적시했지만,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은 제외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김병주 회장과 MBK는 지금 단계에서는 사기에 관여했다고 따지기 어려운 만큼 우선 홈플러스 관계자만 고소 대상에 포함했다”며 “추후 드러나는 것을 확인한 뒤 김 회장 등을 추가로 고소할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국내 한 상장사는 138억원에 달하는 홈플러스 관련 채권에 사들였는데, 최근 “김 회장 등 MBK 경영진의 악행으로 회사가 존망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며 김 회장 등 MBK·홈플러스 경영진을 고소했다.

홈플러스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긴급한 기업회생 신청으로 인해 피해를 입히고 걱정 끼쳐 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며 “금감원에서 실시하는 조사·검사에 성실히 응하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