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관세전쟁을 본격화한 이후 미국 달러와 국채, 주식 등 3대 자산의 가치가 일제히 급락하는 ‘트리플(triple) 약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 나라의 주식과 채권을 동시에 팔고 그 자금을 외화로 바꿔 해외로 빠져나갈 경우 발생하는 현상이다. 1990년대 초 일본은 버블 경제 붕괴 후 ‘잃어버린 30년’에 돌입하기 직전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 트리플 약세를 겪은 적이 있다. 기축통화국으로서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관세율을 공개하며 관세전쟁을 선포한 지난 3일 이후 15일까지,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는 3.5% 하락했다. 미국 국채 10년물 가치는 7.2%, 주가(S&P500)는 4.7% 떨어졌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달러 자산의 트리플 약세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시기인 1970년대에나 보이던 조합”이라며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는 달러 자산 트리플 약세가 추세적으로 등장한 사례가 없다”고 했다. ‘최후의 안전 자산’으로 통하는 달러 표시 자산들이 일제히 약세를 보이는 상황이 매우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재닛 옐런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은 14일 CNBC에 출연해 미국 채권 시장의 투매 상황에 대해 “투자자들이 달러 기반의 자산을 기피하기 시작했고, 이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근간인 미국 국채의 안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미국 선호가 견고하다면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은 미 국채에 대한 수요를 높여 달러화 강세로 이어져야 하는데, 최근 상황이 정반대라는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운 트럼프의 관세 정책 결정이 다른 어느 곳보다 미국에 더 큰 경제적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달러화 약세는 상대적인 원화 강세(달러 대비 원화 환율 하락)로 나타나고 있다. 1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 환율은 1425.5원에 마감(오후 3시 30분 기준)했다. 상호관세가 발효된 지난 9일보다 60원 가까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