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7일 “추가경정예산(추경)을 12조원 규모로 집행하면 성장률을 0.1%포인트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올해 성장률은 당초 예상한 1.5%를 밑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총재는 이날 한은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앞서 이 총재는 지난 2월 “추경을 15~20조원 규모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이 정도면 성장률을 0.2%포인트 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한 바 있다. 훨씬 더 낮은 규모의 추경이 추진되고 있는 만큼 성장률 견인 효과도 낮춘 것이다.
이 총재는 정부지출승수를 0.4~0.5 정도로 보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예산을 1원 더 쓰면 국내총생산(GDP)이 0.4~0.5원 늘어난다는 뜻이다.
◇”1분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한은은 올해 성장률이 지난 2월 전망치(1.5%)를 하회할 것으로 봤다. 이 총재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올해 성장률이 크게 낮아질 것”이라며 “미국 관세 정책 영향도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올해 1분기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돼 올해 성장률이 상당히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은은 또 “1분기 성장률은 2월 전망치 0.2%를 밑돈 것으로 추정한다”며 “소폭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길어지고 있고, 미국 관세 정책에 대한 우려로 경제 심리가 위축됐으며, 대형 산불 등의 국가적 재난도 겹친 영향이다.
◇5월 금리 인하 가능성 시사
이날 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동결한 결정에 대해 “(미국발 관세 충격으로) 갑자기 어두운 터널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라며 “속도를 조절하면서 밝아질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는 “물가가 안정된 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올해 1분기 경기 부진, 글로벌 통상 여건 악화로 성장이 낮아질 위험이 커졌다”면서도 “미국 관세 정책 변화와 무역 협상 전개, 정부의 경기 부양책 추진 등에 따른 전망 경로가 불확실하다”고 했다.
이어 “환율의 높은 변동성 및 가계대출 흐름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는 만큼 현재의 금리 수준을 유지하면서 대내외 여건 변화를 점검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최근 1410~1480원 사이에서 움직이는 등 매우 큰 폭의 변동을 보이고 있다.
이 총재는 오는 5월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는 “금융통화위원 6명 전원이 3개월 내 기준금리를 연 2.75%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다만 이런 전망은 경제 상황에 따른 조건부”라고 강조했다.
이날 금통위원 6명 중 신성환 위원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추자는 소수 의견을 냈다. 이 총재는 “최근 물가를 보면 큰 폭의 금리 인하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환율이나 가계부채 등에 대한 우려가 남아있어 이번에는 0.25%포인트 폭의 인하로 가자는 뜻”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