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발(發) 관세전쟁에 귀금속계 ‘투 톱’인 다이아몬드와 금의 운명이 엇갈리고 있다. 관세 부과 대상에 다이아몬드가 포함되면서 820억달러(약 120조원) 규모의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은 최악의 위기를 맞은 반면, 관세전쟁의 유일한 도피처로 떠오른 금은 그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최근 1년간 다이아몬드 가격은 우하향, 금 가격은 우상향 중이다.
16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두바이와 더불어 다이아몬드 유통 허브로 꼽히는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다이아몬드 일일 선적량이 지난 3일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각국의 상호 관세율을 발표하며 관세전쟁을 본격화한 이후 이전의 7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앤트워프 다이아몬드 센터의 카런 렌트메이스터르스 최고경영자(CEO)는 FT에 “트럼프 관세 발표 후 이곳에서 다이아몬드 배송이 사실상 멈춰 섰다”고 했다.
◇다이아몬드 가격은 곤두박질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 수입품에 관세 10%를 부과하며, 금·구리 등 산업재로 쓰이는 광물은 제외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관세를 피하지 못했다. 다이아몬드는 연마 공정이 이뤄진 국가를 원산지로 치는데, 세계 다이아몬드 90%가 인도에서 연마된다. 세계 최대 규모 기관인 미국감정기관(GIA)이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부가 있어, 미국은 다이아몬드 공급망에서 인증을 주로 맡는다. 향후 미국과 인도의 관세 협상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미국의 다이아몬드 수입 업자들은 미국이 인도에 예고한 상호 관세율(27%)도 추가로 얻어맞아야 한다.
관세전쟁 이전에도 다이아몬드 가격은 하향세였다. 국제다이아몬드거래소(IDEX)에 따르면 다이아몬드 지수는 1년 전 107.2였는데 지난 15일 기준 95.43까지 11% 떨어졌다. 이 지수는 다이아몬드 국제 가격을 지수화한 것인데, 2001년 2월 가격을 기준(100)으로 삼는다. 최근 지수가 100 밑으로 떨어지면서 다이아몬드 값이 24년 전보다 싸졌다는 뜻이다. 다이아몬드 값은 2년 반째 곤두박질치고 있다.
다이아몬드에는 악재가 겹쳐 있다. 실험실에서 제작한 랩 그로운(lab-grown) 다이아몬드 성장세가 최근 천연 다이아몬드 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랩 그로운은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의 10~20% 수준이면서도 성분은 같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다이아몬드 시장인 중국의 혼인신고 건수 감소도 악재다. 2013년 1346만건에 달하던 중국의 혼인 건수는 작년 610만6000건으로 10여 년 사이 반 토막 났다. 결혼 예물인 다이아몬드의 수요도 덩달아 급락했다.
◇금값은 천정부지
국제 금값(6월 인도분 선물 기준)은 이번 주 들어 트로이온스(31.1g)당 3200달러 선을 넘어서며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15일 3240.4달러로 장을 마치며 또 최고치를 깼다. 트럼프의 오락가락 관세정책으로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달러도 약세를 보이자 금은 거의 유일한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 1년간 금값은 35% 올랐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올해 말 금값 전망치를 기존 3300달러에서 3700달러로 올렸다.
폴란드, 튀르키예, 체코 등 신흥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 확대와 상장지수펀드(ETF) 자금 유입도 금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중국인민은행은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 연속 금 보유량을 늘려 지난 2월 말 기준 사상 최고 수준(2290톤)의 보유량을 기록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1기 때 미국과 관계가 나빠지자 중국이 금 보유량을 100톤 늘렸는데 지금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국내 자산가들도 금 투자에 눈을 돌리고 있다. 16일 하나금융연구소가 발표한 ‘2025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국내 부자 800여 명은 올해 투자 의향이 있는 자산으로 예금(40.4%)에 이어 금(32.2%)을 꼽았다. 부동산(20.4%)은 12개 주요 자산 중 8위에 그쳤다.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와 맞물려 금이 가장 명확한 위험 회피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한동안 금값 상승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