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지건설 주가/네이버

시공능력 평가 순위 570위 중소 건설사 상지건설. 지난달까지는 하루 거래량이 1만주도 안 되는 ‘잊힌 주식’이었다. 이달 1일 주가는 3165원, 시가총액은 100억원대에 머물렀다.

그런데 2일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와 관련된 테마주라는 소문이 SNS와 유튜브 주식 채널을 타고 퍼지며, 주가가 17일까지 14배 뛰었다. 거래소가 매매를 중단시킨 이틀을 제외하고 10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친 결과다. 17일 종가는 4만3400원, 시가총액은 1728억원으로 불어났다.

상지건설이 테마주로 묶인 이유는 황당하다. 사외이사였던 임무영씨가 2022년 대선 당시 이재명 캠프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는 것. 하지만 그는 지난해 3월 임기가 끝나 현재는 회사와 관련이 없을뿐더러, 이번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국발 관세전쟁 여파로 투자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도 국내 정치 테마주는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이달 18일까지 주가 상승률 상위 10종목 중 9개가 이재명 전 대표(7개) 또는 한덕수 총리(2개) 관련 테마주다.

◇민주당 성향 유튜버가 투자?… 떴다방 뺨치는 대선 테마주

“호재요? 있다면 저희도 말씀드리고 싶지요. 이건 시장에서 도는 얘기라서 저희도 말씀드리기 뭣하긴 한데, 저희 회장님이 이재명 후보와 같은 경주 이씨라는 것 외에는….”(태광그룹 관계자)

이달 들어 태광그룹 계열사인 흥국화재 우선주 주가는 120% 가까이 뛰었다. 6월 3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가가 급등하는 정치인 테마주들은 흥국화재처럼 해당 정치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픽=김성규

◇요지경 테마주들

최근 주가 상승률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테마주들은 이재명 후보가 ‘인공지능(AI)에 100조원 투자’ 공약을 내놓으며 방문한 퓨리오사AI라는 회사와 관련된 곳이 많다.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정책 수혜가 기대되기는 하지만, 회사 재무구조나 성장성 등은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그저 관련성 하나만으로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

한덕수 총리와 관련된 테마주도 양상은 비슷하다. 이달 주가 상승률 4위인 시공테크는 최대 주주가 한덕수 권한대행과 과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함께 활동한 이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급등세를 탔다.

오리엔탈정공은 이재명 후보가 청년 시절 근무했던 회사(오리엔트정공)와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테마주로 묶이는 촌극도 벌어졌다.

상지건설의 경우 민주당과 가까운 경제 유튜버 때문에 주가가 급등하는 측면도 있다. 2018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 용인시장 예비후보였던 선대인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이 상지건설 최대 주주인 중앙첨단소재라는 회사 주식을 매집한 것이 알려지며 ‘묻지 마 매수세’가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중앙첨단소재는 지난 14일 선씨 부부에게 30억원 등 총 100억원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한다고 공시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적자를 낸 데다 단기 차입금 대비 현금성 자산이 부족한 상지건설 같은 기업에 투자하는 사람은 ‘꾼’ 아니면 거기에 몰려드는 ‘불나방’ 외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더욱 극성인 이유

선거철마다 떴다 사라졌던 정치 테마주가 최근 더욱 극성을 부리는 이유가 뭘까. 전문가들은 여야 갈등이 심화하고, 이슈에 민감한 젊은 투자자가 증가하고, 이들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정보를 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20~30대는 뉴스보다는 커뮤니티 기반의 정보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증권가 관계자들은 “개인 투자자들은 단기 이슈와 테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했다. 최근 증권가 정보(혹은 소문)는 텔레그램 등 메신저앱을 통해 전달되고, 주식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된다. 이렇게 확산된 소문은 유튜브를 통해 기정사실처럼 여겨진다.

문제는 이 속도가 실시간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다는 것이다. 정치 관련 루머나 관련 인물 기업 정보는 특정 정치인의 이름이 거론되기만 해도 자동으로 주가가 움직일 정도로 반응 속도가 빠르다. 소위 ‘정치인+동문’ ‘정치인+고향’ 등 단순 연결 고리만 있어도 단타 매매 대상이 된다.

◇테마주의 뻔한 말로

정치 테마주의 끝은 대부분 폭락이었다. 지난해 총선 국면에서 ‘한동훈 테마주’로 떴던 대상홀딩스는 총선 직전 1만2110원에서 총선 직후 8420원까지 30.5% 급락했다. 승리한 쪽 테마주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재명 전 대표의 고향인 경북 안동에 본사를 뒀다는 이유로 테마주로 묶였던 동신건설 주가는 작년 총선 직전 3만850원까지 올랐다가 총선 이튿날 2만원으로 35% 급락했다. 상지건설도 18일엔 주가가 12.33% 급락했다.

이런 위험을 알고도 뛰어드는 사람이 증가한 것도 최근 트렌드다. 국내 주식시장이 상승 동력을 잃은 상황에서, 이른바 이슈성 종목을 잡아 단타를 치겠다는 것이다. ‘안 오르는 종목 백날 잡고 있는 것보다, 정치 테마주 잘 잡으면 하루 만에 벌 수 있다’는 심리다.

감독 당국이라고 손 놓고 있을 리 없지만, 여의도 투자자들 사이에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말이 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서버에 기록도 남지 않는 메신저앱에서 작당을 모의한 뒤 여러 서버에서 분산해 치고 빠지는 식이라 점점 더 적발이 어렵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