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장률이 사상 처음으로 4개 분기 연속으로 0.1% 이하의 ‘제로(0)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년간 우리나라의 성장이 사실상 멈췄다는 얘기다. 성장률이 4개 분기 연속으로 0.1% 이하를 기록한 것은 과거 대형 경제 위기 때도 없던 일이다.
전문가들은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데다가 잠재성장률도 낮다 보니 회복력마저 떨어진 결과”라며 “우선 내수를 살리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추경), 금리 인하 등 적극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하고 있다.
◇‘4개 분기 연속 제로 성장’ 쇼크
한국은행은 지난 17일 ‘올해 1분기(1~3월) 및 향후 성장 흐름 평가’ 보고서에서 “1분기 우리나라 성장률이 지난 2월에 내놓은 전망치인 0.2%보다 더 낮으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아무리 선방해도 0.1%보다 높은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지난해 2분기 이후 분기별 성장률은 -0.2%→0.1%→0.1%→0.1 이하(2025년 1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은 “비상계엄, 탄핵 등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장기화하고, 미국 관세 정책에 대한 우려 때문에 지난달 경제심리가 다시 위축된 데 따른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현상은 과거 큰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도 없던 일이다. 1997년 IMF 외환 위기가 터지자, 그해 4분기부터 성장률이 3개 분기 동안 -0.6%→-6.7%→-0.8%를 기록했지만, 네 번째 분기(1997년 3분기)에는 2%라는 큰 폭의 회복세로 돌아섰다. 2008년 금융 위기 때나 2020년 코로나 위기 때도 2개 분기 연속으로 0.1%를 밑도는 성장률을 기록해도, 세 번째 분기에는 곧바로 1~2% 성장하는 회복력을 보여줬다.
◇구조 개혁도, 회복력도 사라져
제로 성장이 고착화될 우려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중 관세 전쟁 등 외부 요인만 탓할 수 없다고 한다. 저출생, 고령화를 맞은 우리 경제가 구조 개혁을 게을리했고, 이에 따른 내수 부진이 고착화된 여파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 때만 해도 우리 경제가 ‘V’자 반등 기대감이 있었지만, 그 후 고령화로 인해 소비가 계속 부진하다 보니 더는 경제 회복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잠재성장률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가 자원을 모두 투입했을 때 물가 상승 없이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로, 경제의 기초 체력을 가리킨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5% 안팎이었는데, 2010년대 3%대 초·중반으로 떨어졌다. 지난해는 2%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구윤철 서울대 특임교수는 “잠재성장률 하락을 최대한 막기 위해 노동이나 자본 생산성을 어떻게 높일지, 기술 혁신을 위해서 어떻게 할지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저성장 고리 끊는 정책 필요”
전문가들은 굳어져 가는 저성장 고리를 끊기 위해선 늦었지만 구조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보다 큰 규모의 추경 편성, 금리 인하 등 경기 대책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최근 12조2000억원 규모의 필수 추경을 편성했지만, 이는 산불 등 재해재난 대응이나 통상 경쟁력 강화 등에 초점이 맞춰져 소비 진작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전망실장은 “내수 침체 속 미국 관세 부과의 영향이 대선 이후 우리 경제에 본격 적용될 것을 감안하면 대선 이후 추경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0%대 후반 등의 성장률을 가정하면 이번을 포함해 30조원 정도의 추경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다만 빠듯한 재정 상황이 걸림돌이다. 적자 국채 발행으로 재정을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의 필수 추경 편성으로 올해 국민 세금으로 갚아야 할 ‘적자성 채무’는 885조4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적자성 채무가 792조3000억원에서 1년 새 11.8% 늘어난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재정 건전성에만 초점을 맞추기에는 현재의 경기 위축이 심각하다”면서 “나중에 속도 조절을 하더라도 금리 인하도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