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주식시장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장 순매도(매수보다 매도가 많은 것) 기록을 쓰는 가운데, 채권은 정반대로 사상 최장 순매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관세 전쟁으로 미국 국채가 더는 안전 자산이 아니라는 불안감이 퍼지는 와중에, 한국 채권이 글로벌 투자자 사이에서 안전 자산 중 하나의 ‘대안’으로 꼽히는 모양새다.

◇한국 주식은 ‘셀’, 채권은 ‘바이’

주식시장만 보면 ‘셀(Sell) 코리아’ 우려가 크다. 하지만 채권시장은 전에 없이 강한 ‘바이(Buy) 코리아’ 행렬이다. 25일 한국은행과 메리츠증권 등에 따르면 외국인 국채 현물 보유 잔액은 276조2019억원(18일 기준)으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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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위기 즈음인 2008년 초만 해도 외국인 보유 국내 채권은 50조원 수준이었다. 2013년 100조원을 돌파했고 2020년 200조원을 넘어선 이후 최근 보유 잔액이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 외국인은 또 국내 채권을 27개월째 순매수하고 있다. 국채, 회사채 등을 모두 포함한 전체 국내 채권 잔액 대비 외국인의 보유액 비율도 10%를 돌파하기 시작했다. 특히 외국인들이 가장 즐겨 사 모으는 국채에선 투자자 중 외국인 보유 비율이 22%에 육박한다.

하지만 주식시장 분위기는 딴판이다. 한국은행 집계를 보면 지난달 외국인의 국내 주식 투자 자금은 11억6000만달러 순유출됐다. 외국인은 지난해 8월부터 지난달까지 8개월 내리 국내 주식을 팔고 있다. 기간뿐만 아니라 규모도 상당하다. 8개월간 누적 순유출 규모는 206억달러(약 29조3200억원 상당)에 이른다. 이달에도 25일까지 10조원 가까운 순매도를 보이고 있어, 9개월 연속 순매도가 유력하다. 금융 위기 때인 2007년 6월부터 2008년 4월까지 11개월 연속 순유출이 발생했던 때 이후로 가장 심한 ‘셀 코리아’다.

◇”한국 채권은 안전 자산” 인증

외국인의 강한 국내 채권 매수세에 국채 금리도 주요국 중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작년 말 연 2.855%로 거래를 마친 10년물 금리는 25일 연 2.576%에 마감했다. 채권 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금리가 떨어진다는 건 채권 가격이 오른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 관세 행보 속에 미국 채권 금리가 요동치는 동안 국내 채권 금리도 잠시 상승세를 탔지만 최근 들어선 안정적으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독일, 영국, 캐나다, 일본, 중국, 호주 등 주요국과 비교해도 한국 채권 금리의 하락 폭이 가장 컸다. 그만큼 한국채 수요가 몰리는 ‘강세’라는 의미다.

그래픽=김의균

주식시장은 냉탕, 채권시장은 온탕인 이런 차이는 왜 벌어지는 걸까. 외국인 투자자들, 특히 글로벌 자산운용사나 지수 추종 상장지수펀드(ETF) 입장에서 한국 주식시장은 여전히 ‘위험 신흥국’이다. 글로벌 주식 시장의 ‘지표’ 역할을 하는 MSCI(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 국가 분류에서 한국은 여전히 ‘신흥국’에 속해 있다. 선진국 지수 편입을 수년째 시도하지만, 공매도 금지나 영문 공시 미비 등을 이유로 선진 시장 클럽에 끼지 못하고 있다. 관세 전쟁이 터지면서 투자자가 위험 자산에서 돈을 빼면서 ‘위험 신흥국’으로 분류된 한국 주식에서도 덩달아 많은 자금이 빠졌다.

◇금리 인하 기대도 한몫

반면 채권시장에선 대접이 다르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3대 국제신용평가사에서 모두 일본보다 높은 등급을 받으며 안전한 투자처로 ‘인증’받고 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이번 관세 충격 때) 외국인들이 원화 표시 자산 중 위험 자산인 주식은 매도한 반면, 안전 자산인 채권은 매수했다”며 “한국이 가진 펀더멘털상 원화 채권은 안전 자산으로 인정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올해 더 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외국인들을 국내 채권시장으로 불러모으는 동력 중 하나다. 금리 하락으로 채권 가격 상승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1분기 성장률이 -0.2%로 마이너스(-) 성장 쇼크를 보인 와중에, 국내외 기관들은 올해 한은이 최소 2회, 많으면 3회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