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종합상사는 오는 24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사명을 ‘현대코퍼레이션’으로 변경하는 안을 의결한다. 창립 45년 만에 처음으로 사명을 바꾸는 것이다. 현대코퍼레이션은 그동안 현대종합상사가 해외 시장에서 사용해온 이름이다. 앞으로는 이 영문명을 공식 사명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종합상사 관계자는 “기존 종합상사 명칭에 갇혀 있던 무역 중심 이미지를 벗어나서 글로벌 종합 비즈니스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사명을 바꾸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사명 변경과 함께 차량용 부품 제조, 신재생에너지, F&B(식음료), 유통, 물류, 친환경 소재, 친환경 에너지 등의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할 계획이다.
최근 자동차·건설·상사·시멘트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사명을 바꾸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현대종합상사처럼 기존 사명이 특정 사업에 국한된 이미지를 갖고 있어 신사업을 적극 키우려는 회사의 전략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 이름을 바꾸는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일부 기업은 굴뚝 산업의 이미지를 탈바꿈하려 영어로 새 사명을 짓는 사례도 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2002년 포항제철이 포스코로 사명을 변경한 것처럼 과거에도 회사 이름을 바꾼 사례가 종종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라면서 “기존 사업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투자자와 주주에게 어필하는 전략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사명에서 업종 떼는 기업들
시멘트 제조 업체인 쌍용양회도 이달 25일 열리는 주총에서 ‘쌍용C&E’로 사명을 변경할 예정이다. 시멘트 제조업을 뜻하는 ‘양회’를 떼고 친환경 사업으로 확장하겠다는 뜻을 담은 ‘C&E’를 도입했다. C&E는 시멘트와 환경(Cement & Environment)의 영문 앞글자를 딴 명칭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연말 정관의 목적 사업에 환경 관련 사업도 추가했다. 홍사승 쌍용양회 회장은 “시멘트 사업을 기반으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롭게 환경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해 종합 환경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기아자동차도 지난 1월 ‘기아’로 사명을 변경했다. 31년 만에 사명에서 ‘자동차’를 뗀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기존 자동차 제조 중심의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대림도 올해 1월부터 사명을 ‘DL’로 변경하고 건설·석유화학·에너지 등 사업 분야별로 혁신에 나서기로 했다. SK텔레콤도 기존 이동통신을 넘어 미디어·커머스·보안 등 종합 IT 기업으로 변신을 위해 ‘텔레콤’을 뗀 사명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신사업 발굴 절박함 담겨
기업들이 사명 변경에 나선 것은 그만큼 신성장 동력 발굴이 절박한 과제라는 것을 나타내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중국 등에선 이미 전기차·인공지능·자율 주행·우주 개발·수소·바이오·친환경과 같은 미래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 이 분야들에서 글로벌 시장을 확실하게 선도하며 미래 먹거리를 꿰찬 기업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한 10대 그룹 임원은 “미국 필름 업체 코닥이 디지털화에 늦게 대응하면서 2012년 파산 위기에 몰렸던 것처럼 기존 사업에만 안주하면 시시각각 변하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며 “사명 변경은 사내 임직원들에게 재창업의 자세로 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는 기업이 사명 변경을 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본업 이외의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려고 하는데 기존 사명이 업종을 제한하고 있으면 신규 사업을 접한 고객들 사이에서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신사업에 진출하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현 사명이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했을 때는 과감히 사명을 변경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