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과 SK그룹, 포스코그룹, 효성그룹 등 국내 수소 산업을 이끌고 있는 4개 그룹이 수소 경제 활성화를 위해 손을 잡았다. 현대차그룹은 10일 오전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경기도 화성 현대차·기아 기술연구소에서 만나 수소기업협의체 설립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르면 오는 9월 출범할 ‘한국판 수소위원회’는 향후 국내 기업의 수소 투자와 수소 인프라 구축 등 수소 사회 진입에 앞장설 계획이다.
◇기업이 주도하는 수소 경제 활성화
현대차·SK·포스코 등 3개 그룹은 지난 3월 수소 경제 활성화를 위해선 민간에서 힘을 모아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최고경영자(CEO) 협의기구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후 효성도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이날 4개 그룹 회장단 회동이 이뤄졌다. 수소기업협의체는 현대차·SK·포스코 등 3개 그룹이 공동의장을 맡기로 했다. 협의체는 오는 7월까지 추가로 참여할 기업을 확정하고, 9월 CEO 총회를 열 계획이다.
4개 그룹은 각각 수소 분야 기술 개발과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소전기차를 양산한 현대차그룹은 오는 2030년까지 연간 수소전기차 50만대,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70만기를 생산하겠다는 목표다. SK그룹은 2023년까지 연간 3만t의 액화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인천에 짓기로 했고, 2025년부터는 액화천연가스(LNG)에서 추출하는 블루수소(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한 수소) 25만t을 생산할 계획이다. 포스코그룹은 2050년까지 친환경 수소 500만t을 생산한다는 방침이며, 효성그룹은 울산에 1만3000t 규모의 액화 수소 공장을 건립한다. 4개 그룹의 투자 금액은 40조8000억원에 달한다.
정의선 회장은 이날 “수소기업협의체를 통해 국내 주요 기업과 협력해 나가면서 수소 사회의 조기 실현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태원 회장은 “수소 산업 육성 및 성장을 위해선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수소 산업이 단단히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우 회장은 “수소 경제로 전환하기 위해선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되고, 산업계도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고, 조현준 회장은 “지속적인 연구 개발(R&D)을 통해 수소 충전 및 공급 설비를 국산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소위원회에 따르면, 수소는 오는 2050년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의 18%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시장 규모도 2조5000억달러(약 2790조원)까지 성장하고, 30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전망이다.
◇수소 공급망 구축에 충전소 확충까지, 넘어야 할 과제 많아
그러나 진정한 수소 사회 구현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먼저 수소차·수소 트럭 보급의 핵심인 충전 인프라 확충이다. 국내 수소충전소는 현재 62곳에 불과하며, 폭발 위험성을 우려하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충전소 숫자가 좀처럼 늘지 못하고 있다.
충전소가 적다 보니 수소차 신차 개발도 덩달아 늦어진다. 국내서 팔리는 수소차는 현대차의 SUV 넥쏘뿐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인프라가 부족하니 수요가 늘지 않고, 업체들도 섣불리 신차 개발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인프라 구축이 돼야 다양한 차급·차종이 나오면서 소비자 선택의 폭도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수소 생산·공급 차원에서도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 현재 국내 수소 생산 방식은 석유화학·제철 공정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수소를 포집하거나(브라운수소), LNG에 고온·고압의 수증기를 쏘아서 수소를 분리(그레이수소)하는 것이다.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불가피하다. 수소가 진정한 친환경 에너지원이 되려면 태양광·풍력으로 생산된 전기를 이용해 물을 전기분해하는 방식(그린수소)이 필요하지만, 생산 단가가 기존 방식보다 최소 3배 더 비싸다.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NEF는 “2030년은 지나야 그린수소가 그레이수소를 대체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수소를 필요한 곳에 제때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서는 수소 전용 파이프라인을 갖춰야 한다. 수송용 탱크로리로만 실어 보내기엔 운송비가 과다하게 들어 경제성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