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의 한 다세대주택 전력계량기의 모습. 전력시장 도매가격이 6개월 연속 치솟으면서 2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오종찬 기자

한국전력이 발전소에서 전기를 사들이는 전력시장 도매가격(SMP)이 지난 5월부터 6개월 연속 오르면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한전의 전력구입비가 급증해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전기요금 인상 압박도 커지고 있다.

20일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0월말 월평균 킬로와트시(kWh)당 SMP 가격은 107.76원을 기록했다. 올 1월 70.65원 대비 52.5%(37.11원)나 급등하며 지난 2019년 3월(112.42원) 이후 2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작년 연평균 SMP 가격이 68.87원이었던 데 비해 올 10월까지 연평균 가격은 85.7원으로 24.4% 증가했다. 지난 11일엔 133.74원까지 치솟았다. 이달 들어서는 20일까지 단 5일을 제외하곤 모두 kWh당 SMP 가격이 130원을 넘었다.

문제는 SMP 가격이 앞으로 더 오를 것이란 사실이다. 국제유가가 SMP에 반영되는 것은 평균 5~6개월 후인데 국제유가는 지난 6월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섰고, 10월 들어서는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섰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12월 SMP가 150원을 넘어서고, 내년 2~3월 최고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한국이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의 가격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 1월 평균 배럴당 54.82달러였지만, 11월 20일까지 월평균 81.55달러까지 치솟았다. 한국·일본이 주로 수입하는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지난 2월 24일 MMBtu당 6.04달에서 이달 18일 37.56달러로 521.9% 폭등했다.

국제 연료 가격 상승은 곧 한전의 연료비와 전력구입비 증가로 이어진다.

◇한전 부실 심화…분기별 공시 이후 최초로 3분기 영업손실 기록

한전은 올 3분기 936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통상 3분기(7~9월)는 냉방 전력 수요가 많아 한전의 영업이익이 최대가 되는 시기지만, 올 3분기엔 2011년 분기별 실적을 공시한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전은 3분기 누적 기준, 자회사인 발전 공기업들의 연료비는 전년 동기 대비 16.4%(1조8965억원), 민간 발전사들로부터 사들이는 전력 구입비는 23.3%(2조8301억원) 늘었다고 밝혔다. 한전 관계자는 “국제 연료가격이 급등한 가운데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 저감을 위해 석탄발전 상한 제약을 시행한 데다 전력수요가 늘면서 LNG(액화천연가스) 발전량이 증가하고,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제도(RPS·Renewable Portfolio Standard) 의무 이행 비율이 7%에서 9%로 상향돼 연료비와 전력구입비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연료비 연동제 도입 취지 무색

정부는 올해부터 연료비를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1분기 kWh당 3원 인하했다가 2~3분기 국제 연료 가격이 급등했지만 물가 안정을 이유로 전기요금을 동결했다. 결국 4분기에야 kWh당 3원 인상했지만, 이는 1분기 3원 인하한 것을 되돌린 것에 불과했다.

유가와 천연가스, 석탄 등 국제 연료 가격이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가운데 4분기엔 난방 전력 수요가 더 늘 전망이다. 하지만 현 정부가 탈원전·탈석탄을 고수하고 있어 값싼 원전과 석탄 발전량을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LNG 발전으로 공백을 메울 수밖에 없지만, 최근 LNG 가격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무섭게 치솟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료비 연동제가 정상 작동해 내년 1분기에 상한인 kWh당 2원을 올린다고 해도 치솟는 국제 연료비 가격을 메우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전기요금을 인상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연말까지 공공요금을 최대한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 취지에 맞게 운영해야 한전의 부실과 전력시장 왜곡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