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갈등을 중재하기 위한 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가 요즘 온라인 플랫폼 업계 관계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이전까지 동반위는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 여부를 심사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시장에서 사업 영역을 나눌 수 있도록 조율하는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그런데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전통 산업 영역에 진입하는 스타트업이나 대기업 계열사가 늘고 이로 인해 골목상권을 뺏겼다고 주장하는 소상공인·자영업자 간 충돌이 급증하면서 이들의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이 커지게 된 것이다. 동반위 관계자는 “플랫폼 시대가 열린 이후 다양한 분야의 이해 당사자들이 동반위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불붙는 ‘적합 업종’ 전쟁, 승자는 누가 될까
동반위에 올라온 ‘플랫폼 전쟁’의 대표적 사례가 식자재 납품업 분야다. 지난해 전국중소유통상인협회는 “우아한형제들(배달의 민족 운영사)과 쿠팡, GS리테일 등이 식자재 납품업에 뛰어들어 동네 수퍼의 생존권을 침해했다”며 식자재납품업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동반위는 오는 4월 말까지 업종 실태 조사를 한 뒤 5월부터 본격적 협의에 돌입할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 플랫폼으로 인한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불거지면, 양측은 상생안 마련을 위한 자율적인 협상에 나선다. 원만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통상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은 동반위에 ‘대기업이 진출할 수 없도록 적합 업종으로 지정해달라’는 신청을 내고, 양측이 동반위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대리운전업을 둘러싼 갈등도 동반위에 올라온 또 다른 플랫폼 전쟁 사례다. 지난해 한국대리운전총연합회는 대리운전 사업에 뛰어든 카카오모빌리티, 티맵모빌리티를 겨냥해 중소기업 적합 업종 신청을 냈다. 작년 11월 조정 협의체가 구성됐지만, 양측 이견이 팽팽해 심의 기한인 5월까지 결론이 나올지 불투명한 상태다.
플랫폼과 전통 사업자 간 전쟁은 기존 대기업 대(對) 중소기업 구도와는 양상이 다르다는 게 동반위 설명이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플랫폼 등장을 반기는 소비자가 적지 않고, 플랫폼을 통해 수익 분배 구조가 투명하게 밝혀지면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근로자 처우도 개선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큰 기업과 작은 기업 간 다툼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플랫폼 사업자가 물량·자본 공세로 시장을 장악하면 산업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는 전통 사업자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대기업·중소기업 먹거리 싸움도 계속
재계의 친환경 바람이 뜻밖에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앞세워 자원 재활용 등 신사업 발굴에 나서면서 예상치 못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SK지오센트릭, 보광 등 대기업이 산업폐기물 처리 사업에 진출하자 전국고물상연합회, 한국자원순환단체총연맹 등이 반발하고 나섰다. “영세 사업자가 대부분인 고물상 업계까지 대기업이 진출하면 어떡하느냐”는 것이다. 폐플라스틱 재활용업도 동반위가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 여부를 검토하는 대상이 돼 심의가 진행 중이다.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의 경우, 동반위와 중소벤처기업부에서는 ‘진출 가능’ 결론을 내렸으나 중고차 업계가 강력 반발하며 추가 대응에 나선 경우다. 중고차 업계는 “완성차 업체가 곧 중고차 시장을 독점하게 될 것”이라며 상생안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
납품 단가 현실화, 협력 업체 비용 전가 등 대기업-중소기업 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설립한 민간위원회로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12월 출범했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 대기업 동반성장지수 발표가 주요 업무다. 오영교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이달 초 제6대 위원장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