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광에 있는 한빛원전 4호기는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멈춰 있다. 안전성 점검을 위한 예방 정비 명목이다. 하지만 원전 전문가들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규제 기관이 보조를 맞추며 계속 발목 잡기를 한 탓”이라고 지적한다. 한빛 4호기는 건설이 중단되며 황량하게 버려진 신한울 3·4호기, 3년 앞서 조기 폐쇄된 월성 1호기와 함께 문재인 정부 ‘탈(脫)원전’ 정책의 폐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며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1000MW(메가와트)급 원전을 원칙 없이 무작정 세워 놓고 있는 것이다.
◇1848일 멈춰 선 한빛 4호기
1996년 가동에 들어간 한빛 4호기는 2009년부터 고장·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18일 정기 정비에 들어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멈춰 있다. 계획대로라면 오는 6월 9일까지 1848일을 세워두게 되는데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언제 재가동될지 알 수 없는 형편이다.
한빛 4호기 정비는 다른 원전처럼 두 달 반에 끝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17년 6월 원자로를 둘러싼 콘크리트 격납 건물에서 공극(틈)이 발견되면서 ‘정비’는 ‘조사’로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달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원전을 선언했고, 공극이 발견된 한빛 4호기는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대표 사례로 꼽히면서 그해 11월 국무조정실이 주관해 구성한 민관합동조사단이 공동 조사에 착수했다. 2년가량 이어진 조사 끝에 140개 공극이 확인됐다.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따라 공극을 채워 정비를 마치고 재가동에 들어가는 게 순서였다. 하지만 현 정부의 탈원전 기조 속 반(反)원전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안전’을 이유로 추가 검증과 평가를 계속 요구했다. 공기업인 한국전력기술은 2020년 3월부터 격납 건물이 안전한지 구조 건전성 평가를 진행했고, ‘문제없다’는 결론을 냈다. 원안위는 이를 제3의 기관이 검증할 것을 요구했다. 프랑스 프라마톰이 검증을 진행했고, 원안위도 자체적으로 한국콘크리트학회에 별도 검증을 요청했다. 두 기관 모두 안전성 기준을 충족한다는 결론을 냈다. 그런데도 작년 하반기 원안위는 산하 기관인 한국원자력기술원(KINS)에 한국콘크리트학회가 낸 보고서 재검증을 지시했는데, KINS의 결론도 ‘문제없음’이었다.
지난 1월 열린 제152회 원안위 회의에서는 한빛 4호기에 대한 안전성 평가 보고 안건이 올라왔다. 하지만 원안위는 지역 주민과 협의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안건 상정을 돌연 취소했다. 원안위는 또다시 한수원에 상부 돔에 대한 안전성 검사를 지시해 지난 2월부터 진행 중이다.
◇원전업계 “원안위의 발목 잡기” vs 원안위 “안전 위한 검증”
원전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두 번, 세 번 평가와 수차례 검증을 거친 원전을 내버려두는 건 과학에 근거한 결정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노동석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원안위가 조사와 검증을 반복적으로 요구하면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진짜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커졌다”며 “공극이 문제라면서 보수조차 못 하게 한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5년 한빛 4호기 가동 중단에 따른 손실은 3조원을 웃돈다.
원전 안전성에 대해 최고 권위를 갖고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할 원안위가 지역 주민과 협의를 핑계로 안전성에 대한 최종 결론을 계속 미루는 것을 두고 스스로 전문성과 권위를 내버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동욱 원자력학회장은 “원안위가 안전성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지역 주민을 설득해야 하는데 이와 정반대로 하고 있다”며 “전문성도 독립성도 없다는 오명을 벗으려면 문제 해결에 자신 있게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안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빛 4호기는 157㎝나 되는 공극이 발생한 곳이라는 점에서 상부 돔 검사를 비롯한 각종 조사와 검증이 필수”라며 “다음 달 나오는 상부 돔 검사 결과에 따라 보수를 진행할지, 수개월에 걸쳐 구조 안전성 평가를 다시 할지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