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서부 공업도시 맨체스터의 서쪽에 있는 산업단지 트래퍼드 파크(Trafford park). 1890년대 조성된 세계 최초 산단으로 꼽히는 곳이다. 1900년대 초 지어진 붉은 벽돌 건물들 사이로 유럽의 대표 소프트웨어 회사 ‘아파드미(Apadmi)’ 등 스타트업들의 본사도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이 산단을 포함한 맨체스터 지역에 입주한 스타트업은 430여 개. 런던을 제외하고 영국에서 가장 많은 스타트업이 모인 곳이다. 하지만 이곳은 1970년대 영국의 섬유 산업 쇠퇴와 맞물려 몰락의 길을 걸었다. 기업들이 빠져나가면서 한때 2만6000명에 달했던 이곳 종사자 수는 1970년 말 1만5000명으로 급감했다.
하지만 트래퍼드 파크는 1980년대 중반 추진한 재생 사업 효과로 990개 기업이 신규 입주하고, 2만9000개 일자리를 창출하며 이전 전성기를 뛰어넘었다. 제도 혁신과 시설 업그레이드를 하며 젊은이들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 것이다. 1987년 영국 정부는 트래퍼드 재생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신규 기업을 유치할 공간을 별도로 조성하고, 기존 중소기업들은 업종별로 나눠 재배치했다. 기업 간 집적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또 1998년 공단 안에 당시 영국 최대 규모 쇼핑·레저 단지인 ‘트래퍼드 센터’도 조성했다.
산업단지의 노후화는 우리보다 앞서 산업화의 부흥과 쇠퇴기를 겪은 국가들도 직면했던 문제다. 그러나 이들 산단 중에는 신산업과 기업을 유치하고, 테마파크·쇼핑센터 등을 조성해 주민들과 공생하며 지역 경제 성장 엔진으로 재탄생하는 곳들도 있다.
◇주거·문화 공존하는 해외 산단들
일본 도쿄 시내에서 요코하마 방향으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오타구는 ‘도심 속 산단’ 한계를 극복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오타구 산단은 버블경제 붕괴로 산업 공동화 현상을 겪었다. 1980년대 1만개에 육박했던 입주 중소기업이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주변에 주택이 늘면서 소음, 악취 민원 등 도심 산단이 겪는 문제가 다양하게 나타났다. 오타구는 소음과 진동 방지 구조를 적용한 공장 아파트를 만들어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기업을 입주시켰다. 건물 상층부에는 직원 아파트와 편의 시설을 조성했다. 또 2012년부터 1년에 한 번 공장을 주민들에게 개방하는 ‘오픈 팩토리’ 행사로 주민과의 공존에 나섰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 포블레노 산단도 노후화를 극복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방직 산업 중심지였다 1960년대부터 쇠퇴한 이곳은 2000년부터 1억8000만유로를 투입해 주거·문화·교육·레저가 공존하는 ‘압축 도시(Compact City)’로 재탄생했다.
◇공장 옆 레저 단지 만들고 산학 협력
해외에서 노후 산단 부활을 위해 관광이나 교육 등과 연계한 사례도 있다. 독일 중북부 볼프스부르크는 주력인 자동차 산업이 일본과의 경쟁에 밀리면서 1990년대 쇠퇴기를 맞았다.
쇠락하던 도시는 1994년 민관 협력으로 시작한 ‘아우토비전 프로젝트’로 새 활력을 찾았다. 세계 최대 자동차 테마파크인 ‘아우토슈타트’를 만들고 주변에는 스타트업 클러스터와 부품 단지를 조성했다. 1938년 벽돌로 지은 오래된 폴크스바겐 공장 발전소를 마주하고 있는 아우토슈타트는 2000년 만들어진 ‘자동차 산업의 디즈니랜드’다. 볼프스부르크는 ‘아우토비전 프로젝트’ 시작 6년 만에 실업률이 17%에서 8%로 하락하고 지역 내 1만2000여 개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연간 관광객만 200만명이 넘는다.
미국은 자체 혁신 능력이 떨어지는 지방 산단을 지역 거점 대학과 연계해 산학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가 운영하는 ‘산업진단센터’는 대학 연구자들이 산단 기업의 에너지 효율화를 지원한다. 35개 대학 교수·대학원생들이 제조기업을 직접 방문해 에너지와 생산성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개선하면서 산단 현대화를 지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