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안 의결을 시작으로 SK그룹의 사업구조 재편(리밸런싱)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그룹 전반에 부실이 쌓이는 상황에서 계열사 간 교통정리를 통해 몸집을 슬림화하고, 체력을 키우는 게 목표다.
우선 미래 성장동력으로 점찍은 배터리(SK온)와 친환경(SK에코플랜트) 사업에는 우량 계열사를 붙여 장기적으로 생존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사업재편의 첫걸음을 떼고 있다. 다만, SK그룹이 보유한 계열사는 여전히 200사가 넘어 중복 사업이나 수익 창출 전망이 어두운 계열사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과감한 정리가 예상된다.
배터리 후발주자인 SK온은 최근 몇 년간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왔다. 배터리 양산을 앞뒀지만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겹쳐 불황 골이 깊어졌다. 10개 분기 연속 적자인데 2026년까지 약 15조원 추가 투자가 예정돼 자금난이 심화했다.
국내 1위 민간 LNG(액화천연가스) 사업자인 SK E&S는 도시가스 사업 등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캐시카우’다. 2022년과 작년 2년 연속 영업이익 1조원을 넘었다. SK온 지원에 버거운 SK이노 입장에선 재무구조가 개선돼 추가 지원 여력이 생긴다.
또, 이날 SK이노의 자회사인 SK온은 같은 자회사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엔텀과 3사 합병을 의결했다. 작년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영업이익 5746억원, SK엔텀은 매출 2576억원인 알짜 회사다. 전기차 수요 부진으로 적자가 계속되는 SK온의 실적을 상쇄할 수 있다. SK 측은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 에너지·화학 사업의 불확실성 증대, 전기차 시장 캐즘 등 급변하는 외부 경영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미래 에너지 사업 분야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합병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SK에코플랜트도 최근 2~3년간 확대한 친환경 분야 투자가 대부분 실패했는데, 우량 계열사와 합병을 통해 자금난을 해소할 계획이다. 계속된 인수합병(M&A) 및 투자로 재무 부담이 커져 지난 3월 말 기준 SK에코플랜트의 부채비율은 245.3%를 기록해 위험 수준인 200%를 넘었다. 18일 이사회를 거쳐 SK에코플랜트 자회사로 편입될 예정인 에센코어,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 역시 작년 500억~600억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방만한 투자’라는 비판까지 나온 문어발식 투자도 대폭 조정될 전망이다. 공격적으로 신사업에 진출했는데, 사업영역은 늘었지만 성과는 부실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투자 전문회사를 표방했던 SK스퀘어에서 고강도 구조조정이 예상된다. SK스퀘어는 크래프톤, 코빗, 원스토어 등 20여 개 회사에 투자했지만 이 중 16개 회사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 최근 대표이사 교체에 이어 몇 차례 매각이 무산됐던 11번가 등 부진한 투자 회사를 정리하고, 반도체 투자 전문회사로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포트폴리오로 재편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주력인 반도체·통신 분야에선 인공지능(AI) 분야에 과감한 투자로 경쟁력을 더 끌어올리는 방향을 택했다. SK텔레콤(SKT)이 지난 16일 미국 AI 데이터센터 기업에 2700여억원을 투자해 지분 10%를 확보한 것도 이런 방침의 일환이다. SKT는 내수시장 한계가 있는 이동통신 외에도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서비스 등 기업을 겨냥한 ‘엔터프라이즈’ 사업에서 시장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8년까지 5년간 총 103조원, 그중 80%인 82조원을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AI 관련 사업에 투입한다. SKT와 SK브로드밴드도 AI 데이터센터 사업에 5년간 3조4000억원을 투자한다. SK 관계자는 “미래 성장성이 있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투자하던 것을 정리하고 AI처럼 경쟁력 있는 시장에 집중하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