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 시각)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 정부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발동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행정부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의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화석연료 중심의 각종 정책을 추진하며 에너지 가격을 낮추고, 이를 세계 각국에 공급해 ‘에너지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취임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 기후협정 재탈퇴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 연설에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제거하고, 물가를 낮추기 위해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이라며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석유와 가스를 보유하고 있고, 가격을 낮춰 전 세계에 미국의 에너지를 수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포한 ‘에너지 비상사태’는 미국이 막대한 규모의 에너지를 생산해 제조업 부흥의 기반을 마련하고, 전 세계 국가에 수출하며, 중국에 맞서겠다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에너지·산업 정책 방향을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지난 19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열린 한 집회에서 “우리는 지금의 두 배, 그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며 “비상 권한을 사용해 대형 공장과, AI(인공지능) 시설을 건설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포한 ‘에너지 비상사태’를 두고 로이터 등 외신을 중심으로는 “어떤 비상상황에도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 것”이라는 해석과 “전쟁이 아닌데도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은 법에 어긋날 수 있다”는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이날 블룸버그는 백악관 관계자와 브레넌 사법센터 보고서를 인용해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 선언은 미국이 핵심 천연자원을 생산하고 허리케인이나 테러 등 비상상황에서도 150개 특별 권한을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대통령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반면 로이터는 시민단체들의 말을 전하며 “전쟁이 아닌 시기에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것은 드물고 검증되지 않은 일”이라며 “법률적인 취약성을 초래할 잠재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취임 직후 파리 기후협정에서 다시 탈퇴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2023년 기준 미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온실가스 배출국이지만, 석유와 가스 시추를 늘리고 파리 기후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다시 공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