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석유화학 대기업 헝리그룹은 최근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 있는 조선소를 확장해 대형 탱커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만들 준비 중이다. 투자금만 92억위안(약 1조8200억원)에 달한다. 이 조선소는 원래 한국 STX그룹이 지었지만, 세계적인 조선업 불황 속에 지난 2015년 파산했다. 하지만 헝리그룹은 2022년 새로 조선업에 진출하면서 이 조선소를 인수해 핵심 기지로 삼았다. 헝리그룹의 조선 계열사인 헝리중공업은 다롄 조선소를 중심으로 지난해에만 선박 270만CGT(선박 건조 난도를 고려해 환산한 톤수)를 수주해 세계 4위에 올랐다.
헝리그룹뿐만 아니다. 26일 조선·해운 시황 분석 기관인 클라크슨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 발주된 선박의 70.6%를 중국 조선소가 따낸 것으로 나타났다. 개별 조선소 기준 수주량으로 1~4위를 포함해 상위 10곳 중 7곳이 중국 조선소였다.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K조선 ‘빅3′ 소속 조선소도 수주량 5~7위에 오르는 등 선전했지만, 올해 중국의 공세가 더 거세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새로 발주된 선박 수주를 기준으로, 중국은 지난 2020년 수주량이 1210만CGT로 시장점유율 44%였지만, 지난해 70.6%로 급등했다. 반면 한국 조선소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32.7%에서 16.7%로 줄었다.
점유율 격차가 꼭 수익 격차를 뜻하진 않는다. 중국 기업은 아직 노동 집약적인 조선업 특성을 활용해 저임금을 유지하며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벌크선이나 컨테이너선, 유조선 같은 낮은 부가가치 때문에 우리 기업이 잘 맡지 않는 선박 위주로 수주하고 있다. 반면 수년간의 수주로 배를 만들 독(dock)이 가득 차 있는 국내 기업들은 LNG·LPG 운반선이나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 설비(FLNG), 친환경 이중 연료 선박 등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로 수주하는 ‘양보다 질’ 전략을 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대규모 투자에 나선 중국 조선소들이 1~2년 내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서도 입지를 넓힐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국 최대 국영 조선사 중국선박그룹(CSSC)은 작년 50억위안(약 9900억원)을 투자해 톈진과 우한 조선소 등에서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능력을 키우기로 했다. 양쯔강조선그룹도 현재 30억위안(약 5900억원)을 투자해 장쑤성 조선소를 확장하고 있다.
다만 트럼프 2기 정부의 중국 견제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작년 4월부터 중국 정부가 자국 조선·해운 기업에 저리 대출과 보조금 등 특혜를 준 의혹을 조사한 결과를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10일 미국 재무부도 중국의 위슨 조선소를 러시아 LNG 사업을 지원했다며 제재 대상에 올렸다. 이런 움직임이 이어지면 K조선 역시 반사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예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