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3일부터 이틀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고위층포럼(CDF)에 참석해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들과 잇따라 만나 미래 사업과 관련 협력 관계 구축에 나선다. 포럼은 이틀 일정이지만, 이 회장은 1주일 안팎 중국에 머물면서 핵심 기업인들과 연쇄 회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최근 삼성 내부에 ‘사즉생(死則生·죽기로 마음먹으면 산다는 뜻)’의 각오를 강조하며 삼성 내부에 강도 높은 위기의식을 불어넣고 있다. 삼성 안팎에서는 이 회장도 역시 솔선하는 의미로 적극적인 글로벌 행보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발전고위층포럼은 2000년부터 국무원 주도로 중국 관료들과 글로벌 기업인들이 모여 중국 경제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다. 해마다 세계 각국의 기업인들이 행사가 열리는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 집결한다. 올해도 이 회장뿐 아니라 팀 쿡 애플 CEO, 크리스티아누 아몽 퀄컴 CEO, 아민 나세르 아람코 CEO, 올리버 집세 BMW 회장,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 벤츠 회장과 BNP파리바, 네슬레, 보쉬, 페덱스, 히타치, 화이자 등 중국 외 글로벌 경영자 80여 명이 참석했다.
특히 이재용 회장이 중국 방문 첫날인 22일 샤오미의 레이쥔 회장을 만난 것이 주목받고 있다. 샤오미는 삼성전자와 가전이나 스마트폰 분야에선 경쟁하고 있지만, 지난해 전기차 산업에 진출하면서 자동차 전장(전자장비) 부문에서 협력 가능성이 커진 상태다.
◇중국 전장 시장 공략 나설 듯
샤오미와 중국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은 22일 베이징의 샤오미 자동차 공장을 찾아 전기차 생산 과정을 살펴보고, 레이쥔 회장으로부터 샤오미의 전기차 전략 등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안팎에선 이재용 회장이 그간 “미래차 시장에 적극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은 행보란 반응이 나왔다. 전장은 그가 반도체와 바이오 이후 삼성의 새 미래 성장 동력이 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점찍고, 일찌감치 차량용 반도체,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에 투자를 늘려왔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17년 ‘디지털 콕핏’(디지털 계기판)과 카 오디오 분야 세계 시장 1위 기업인 하만 인수·합병을 주도하며 미래차 시장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이 회장은 2023년 중국 방문 때에도 텐진의 삼성전기 MLCC(적층세라믹콘덴서) 공장을 방문해 사업 현황을 살피기도 했다. MLCC는 ‘전자 산업의 쌀’이라 부르는 부품으로, 전기를 저장했다가 각 반도체에 필요한 만큼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이번에 찾은 샤오미는 중국 미래차 시장의 차세대 주역 중 하나로 꼽힌다. 자동차 시장 진출 첫해인 작년에 전기차 SU7을 14만대 팔았고, 올해 판매 목표를 35만대까지 늘렸다. 2027년엔 해외 진출도 계획 중이다. 거기다 중국은 작년 전기차 판매량(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포함)이 1079만대로 전년 대비 48.3% 늘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여파를 겪는 다른 시장과 차별화가 뚜렷하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다른 중국 전기차 기업 CEO와도 잇따라 접촉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산업은 탑승자의 안전 문제와 직결돼 있어 협력 관계에서 신뢰가 핵심이라 진입 장벽이 높아 이 회장이 직접 나서는 것이 실제 사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했다.
◇미·중 갈등 속 총출동한 글로벌 CEO
한편 중국발전고위층포럼이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선 후 중국 견제를 더욱 강화하는 와중에 열린 것도 관심사다. 이 행사는 관례적으로 폐막 직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나 리창 총리가 참석 기업인들과 별도로 만나기도 해 어떤 인사가 중국 최고위층과 회동하는지도 주목받고 있다.
포럼 참석자로는 중국 인사를 제외하면 미국 기업인이 약 30명으로 가장 많다. 존 손턴 아시아소사이어티 이사장, 숀 스타인 미중무역전국위원회장, 존 노이퍼 미국반도체협회 대표 등 중국과의 경제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 내 핵심 인사들도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스티븐 데인스 공화당 상원의원이 이 포럼을 계기로 중국을 방문해 허리펑 중국 부총리와 22일 면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