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온산제련소 내에 있는 LNG발전소. /고려아연

코레일이 2027년까지 경기 고양 차량 기지에 열병합발전소를 짓는 방안을 추진한다. 코레일은 KTX와 수도권 전철 1·3·4호선 등을 전기로 가동하고 있다. 산업용 전기 요금이 가파르게 치솟아 재무 부담이 커지자, 직접 전기를 만들어 ‘자급자족’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코레일은 영업 비용 6조6400억원 중 5800억원(8.7%)을 전기 요금으로 냈다. 올해도 전기 요금이 600억원 더 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세계에서 산업용 전기 요금이 가장 저렴한 나라 중 하나였다. 지난 정부는 탈원전과 유가 급등으로 한국전력의 적자와 부채가 천문학적으로 늘었는데도 전기 요금을 한 차례밖에 올리지 않았다. 2023년 5월 이후에는 국민적 저항이 큰 주택용 요금은 거의 손대지 않았고, 산업용 전기 요금만 두 차례나 올리면서 기업들이 경영난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몇몇 기업은 더 저렴한 전력 도매시장에서 전기를 직접 사거나, 공장 내에 발전소를 직접 짓는 ‘자구책’까지 마련하는 실정이다.

그래픽=박상훈

◇산업용 전기 요금 폭탄에 자구책 마련

전체 열차의 98%를 전기로 운행하는 코레일은 전기 요금 부담의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사례다. 열차의 총 운행 거리가 지난해까지 3년 새 1.2% 줄어든 사이, 전기 요금이 수차례 오르면서 비용 부담은 오히려 커졌다. 한문희 코레일 사장은 지난 25일 기자 간담회에서 “전기 요금이 올라 재무 건전성에 한계가 왔다”며 전국 곳곳에 발전소를 짓는 등 전기 요금 절감의 필요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전력 소비가 많은 정유, 반도체, 철강 등 국내 주요 제조업 기업도 전기를 자체 조달하는 발전소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2027년 준공 목표로 충남 서산 공장 인근에 약 277㎿ 용량의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소를 짓고 있고, 현대제철은 499㎿ 규모의 LNG 발전소를 2028년까지 충남 당진 공장에 지을 계획이다. 이미 SK하이닉스는 전기 요금이 꾸준히 오른 2023~2024년 충북 청주와 경기 이천에서 각각 585㎿ 용량의 LNG 발전소 가동에 들어갔고, 고려아연은 온산제련소에서 2021년부터 272.5㎿ 규모의 LNG 복합발전소로 전기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한전이 아닌 다른 전기 판매자를 찾는 경우도 있다. 전례 없는 불황을 겪는 석유화학 업계가 대표적이다. SK가스의 석유화학 자회사인 SK어드밴스드는 지난해 말 전력 거래소에 한전의 산업용 전기 대신, 1kWh(킬로와트시)당 약 30원 저렴한 전력 도매시장에서 직접 전기를 사겠다고 신청했다.

SK어드밴스드가 활용한 ‘전력 시장 직접 구매’ 제도는 이미 2003년 도입됐다. 소비자가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전력 도매시장에서 전기를 살 수 있게 한 제도다. 그동안 한전의 산업용 전기 요금이 워낙 저렴해 막상 신청하는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정부가 산업용 전기 요금을 1kWh당 185.5원까지 올리자 전기 요금 부담이 커진 기업들이 20년 넘게 묵혀 있던 제도를 찾아 나선 것이다.

한전의 부실한 재무 상황을 개선하겠다며 수차례 산업용 전기 요금을 올린 충격이 누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5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최근 3년간 주택용 전기 요금이 kWh당 40.4원 오르는 동안 산업용은 80원 올랐다”며 “우리 기업의 생산·투자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매우 크다”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이달 초 발표한 조사에서도 국내 제조업 기업 10곳 중 4곳(39.4%)이 한전 대신 새로운 전력 조달 방식을 택하겠다고 답했다.

◇전기 요금 고공 행진, ‘脫한전 러시’ 우려

기업들이 전력을 시장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절차 등 세부 사항을 규정한 ‘전력 시장 직접 구매’ 규칙은 28일 산업부 전기위원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규칙이 통과돼 제도가 완비되면 SK어드밴스드를 시작으로 다른 기업들도 줄줄이 직접 구매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주택용 전기 요금 인상이 쉽지 않고, 산업용 전기 요금을 내리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기업을 위해 한전 외의 선택지도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기업들이 전력을 사들일 선택지들을 열어줘야 기업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대용량 구매 고객이 많아 수익성이 높은 산업용 전기 요금 판매가 줄면, 한전의 재무 구조 개선에도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는 반응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