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부산 사상구에 있는 이차전지(배터리) 기업 금양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 류광지 금양 회장이 최근 상장폐지 위기와 관련, 주주 앞에서 ‘회사를 살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취지의 사과문을 직접 낭독했다.

행사 2주 만에 '거래 정지' 지난 3월 5~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5’에 참가한 금양 부스에 원통형 배터리 모형이 전시돼 있다. 금양이 원통형 배터리 생산 거점으로 짓겠다던 부산 공장은 공사 대금 미납으로 준공이 지연되고 있다. 금양은 또 3월 21일 금융 당국에 의해 주식 거래가 정지돼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다. /연합뉴스

한때 세계 1위 발포제 기업이었던 금양은 ‘이차전지’ 신사업에 도전해 한때 이 분야 대표 테마주로 꼽히며 시가총액이 2021년 2000억원대에서 2023년 최고 10조원대까지 올랐다. 시총으로 SK텔레콤, 우리금융지주 같은 대기업도 제쳤다. 하지만 막상 이 회사는 그간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콩고·몽골 광물 사업’ 등 신사업을 연달아 추진했지만 이차전지 관련 매출은 사실상 전무했다. “기술력이 의심스럽다”거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의혹만 커져왔다.

지난달 21일 “회사의 존속이 불투명하다”는 외부 감사인 ‘의견 거절’ 판단에 따라 주식 거래는 정지됐다. 의견 거절은 상장폐지 사유다. 지난 3월 초 배터리 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에서 대형 부스를 차리고 기술력을 홍보한 지 보름 만의 일이다. 금양이 이차전지 사업을 시작한 2019년부터 작년까지 6년 치 사업 보고서로 이 회사가 해온 사업과 실제 성과가 어땠는지 분석해 봤다.

그래픽=백형선

◇사실상 신생 기업이 매년 신사업 목표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은 부산 향토 중견 화학 기업 금양은 신발 깔창, 장판 등 다양한 곳에 쓰이는 소재인 발포제 분야에서 한때 세계 1위(점유율)에 오르기도 했지만, 한계에 봉착한 기업이었다. 영업이익률이 잘해야 3~5%를 오가는 수준이었다.

미래 신사업 발굴을 위해 2019년 ‘배터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차전지 핵심 소재인 수산화리튬 가공 공정이 발포제 공정과 비슷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배터리 분야에선 사실상 신생 기업인 이 회사는 이후 ‘배터리 대표 테마주’로 꼽히면서 4000~5000원대였던 주가가 한때 19만원대까지 올랐다. 그리고 금양은 신사업 계획도 잇따라 발표했다. 금양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수산화리튬 사업 추진을 본격화했고, 2021년에는 수소 연료 전지 신사업도 추가했다. 2022년에는 콩고 광산에 투자 계획을 밝혔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주주들의 기대가 빠르게 커지면서 회사가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며 “신사업이 회사의 규모나 기술력에 비해 과도해 보였다”고 했다.

2023년 5월 금양은 몽골 현지 광산 개발 기업의 지분 60%를 6000만달러(당시 약 800억원)에 인수하는 업무 협약(MOU)도 맺었다. 회사 측은 몽골 광물 탐사 기업 자료를 인용해 “해당 광산에 리튬(70조원), 텅스텐(22조원) 등 118조원 가치의 광물이 매장돼 있다”고 했다. 2024년 몽골 광산에서 매출 4024억원, 영업이익 1610억원이 예상된다고 공시했다. 또 약 6100억원을 투자해 부산 기장에 원통형 배터리 공장을 짓고, 2024년 양산이 목표라고도 했다. 이런 사업이 호재로 여겨지고, 금양에서 홍보이사로 활동한 박순혁 전 이사가 유튜브 등에서 ‘밧데리 아저씨’로 불리며 이차전지 분야 투자를 권하면서 이 회사에 대한 관심은 더 커졌다.

회사 측이 118조원어치 광물이 매장돼 있다고 밝혔던 몽골 광산도 ‘실적 뻥튀기’ 의혹이 불거졌다. /금양 유튜브

◇배터리·광물 신사업 줄줄이 표류

그러나 금양이 발표한 사업은 대부분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논란을 빚고 있다. 금양은 작년 9월 정정 공시를 통해 2024년 몽골 광산 매출 전망치를 4024억원에서 66억원으로, 영업이익 전망은 1610억원에서 13억원으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기존 발표 대비 각각 1.6%, 0.8% 수준이었다. ‘실적 뻥튀기’ 의혹으로 결국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됐다.

금양이 “테슬라보다 앞선다”고 강조한 원통형 배터리 생산 거점인 기장 공장은 공사 대금 미납으로 준공이 지연되고 있다. 작년 말 기준 금양의 이차전지 연구 인력은 43명, 이차전지 관련 특허는 5건에 그친다. 전기차용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는 연구 인력 수천 명, 특허 수만 건을 보유한 국내 배터리 3사도 아직 양산을 못 한 품목이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산업이 급성장할 때 많은 기업이 눈길을 끌었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이나 확인되지 않은 투자가 많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