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화학 소재 기업인 도레이첨단소재의 경북 구미1공장 강당. 이 회사 신입 사원으로 출발해 1999년부터 26년간 대표이사와 회장으로 재직한 ‘최장수 전문 경영인 CEO(최고경영자)’인 이영관(78) 회장의 퇴임식이 열렸다. 퇴임식이 열린 구미 공장은 그가 입사할 당시 공장 부지 기초 공사를 하던 곳으로, 그의 첫 발령지이기도 하다.
구미 공장의 터를 닦는 시멘트 기초 공사부터 현재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필름, 아라미드 섬유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이 회장은 이날 약 70명 직원이 참석한 ‘조촐한’ 퇴임식을 가진 뒤 전북 군산 공장, 충남 공주 공장을 1박 2일 일정으로 돌며 직원들에게 인사와 앞으로 당부를 전할 예정이다.
도레이첨단소재는 일본 도레이(TORAY)사가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외국계 회사다. 삼성그룹 제일합섬으로 시작해 1995년 새한그룹으로 계열 분리됐다가 1999년 새한과 도레이의 합작 투자 기업 ‘도레이새한(현 도레이첨단소재)’으로 새로 출범했다. 그 당시 이 회장이 초대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 홍익대 화학공학과 졸업 후 제일합섬에 입사, 사실상 한 회사에만 재직한 이 회장의 경험과 리더십을 반영한 인사였다. 그가 사장과 회장을 지낸 1999년 이후 지난 26년 동안 도레이첨단소재는 단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고 흑자를 이어갔다. 회사는 필름·섬유 중심의 전통 사업에서 탄소섬유, 이차전지 분리막 등 고부가 첨단 소재로 사업을 전환했다.
이 회장은 도레이의 ‘한국 제조 공장 확대 전략’을 줄곧 주도했다. 그는 2012년 본지 인터뷰에서 “성능 좋은 탄소섬유가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게 되면 소재 산업 지형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며 첨단 소재 사업 전환을 강조했고, 그 생산 거점으로 한국을 내세웠다.
2013년 회장에 오른 그는 일본 본사를 설득해 한국에 조(兆) 단위 투자를 이어갔다. 1999년 설립 당시 380억원 적자를 나타냈지만, 이후 매년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2023년엔 매출액 2조7341억원, 영업이익 834억원을 기록했다.
이 회장은 2019년 CEO에서 물러난 뒤에도 회장으로 경영 업무를 이어갔다. 2019년에는 한일 경제 협력 증진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욱일중수장(旭日中綬章)을 받았다. 후임 회장은 일본인 경영진 규노 모토히사 현 부회장이 취임한다. CEO는 작년 4월 취임한 김영섭 대표이사 사장이 계속 맡는다. 이 회장은 회사 고문 역할을 맡는다.
이 회장은 앞서 2023년 회고록 ‘소재가 경쟁력이다’ 출간 간담회에서 “회장보다 CEO라는 호칭을, 현장에서는 직급보다 형님으로 불리기 좋아한다”며 “나는 ‘소재’처럼 화려하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경쟁력을 갖추는 데 집중해 왔다”고 했다. ‘오랜 세월 어떻게 변함없이 한자리를 지켰느냐’는 질문에는 가장 먼저 ‘주인 정신’을 꼽았다. 이 회장은 “누가 시켜서, 월급을 받기 때문에 일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일이 곧 나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