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그룹의 IPTV(인터넷 TV) 방송 지니TV는 지난 6일 그동안 자사 채널 위주로 공개하던 주요 콘텐츠를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서도 함께 공개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난 7일 첫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신병3’는 CJ ENM의 OTT 티빙에서도 동시에 선보였다. 지니TV는 앞서 드라마 ‘라이딩 인생’을 티빙에서 함께 방송한 데 이어 다음달엔 드라마 ‘당신의 맛’을 넷플릭스에서 동시에 공개한다.

핵심 콘텐츠를 타사 OTT에서 동시에 공개하는 트렌드는 지상파 3사도 마찬가지다. KBS는 지난 2월 신작 드라마 ‘킥킥킥킥’을 티빙에서도 함께 방송하기 시작했고, ‘태양의 후예’나 ‘쌈, 마이웨이’ 등 과거 인기 드라마도 티빙 구독자에게 공개했다. SBS는 그동안 웨이브 외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모래시계’ ‘런닝맨’ 같은 인기 프로그램을 올해부터 6년간 넷플릭스에서 송출하기로 했다. MBC는 예능 ‘무한도전’을 쿠팡플레이에 이어 인터넷 방송 플랫폼 치지직·SOOP 등에서도 방송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등 해외 OTT에 맞서 콘텐츠 독점을 고수하던 지상파·유료 방송 등 국내 방송업계가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축적한 콘텐츠 경쟁력을 이유로 다른 OTT에 벽을 높게 쌓아왔지만, 이제는 콘텐츠 ‘대방출’에 나선 것이다. 지상파와 유료 방송 같은 기존 사업자의 채널 영향력은 계속 약화하는 가운데 콘텐츠 제작 비용까지 급등한 탓에 다른 플랫폼과 콘텐츠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수익성 확보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그래픽=양인성

◇OTT에 손 내민 지상파 3사

그간 지상파 3사의 주요 프로그램은 넷플릭스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주로 지상파 3사와 SK스퀘어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국내 OTT 웨이브를 통해 콘텐츠를 공급해 왔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등 해외 OTT에 맞서기 위해서라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지상파 3사와 웨이브 간 콘텐츠 독점 공급 계약이 끝나면서 상황이 확 달라졌다. SBS가 12월 넷플릭스와 제휴 관계를 맺으며 포문을 열었고, 이어 KBS도 티빙과 제휴를 시작했다. MBC 역시 장수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을 내세워 제휴 범위를 넓혔다.

지상파 방송사의 이런 변화는 갈수록 OTT의 영향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콘텐츠 제작비는 급등하고 광고 수익은 줄면서 경영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빠듯해진 형편에 돈벌이가 되는 인기 콘텐츠를 외부에 팔면서 자금 수혈에 나선 것이다. KBS는 최근 3년간 당기순손실이 총 141억원에 달했고, SBS는 지난해 영업적자 192억원을 나타내며 2016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MBC도 영업이익이 2022년 566억원에서 지난해 9분의 1 수준인 66억원으로 급감했다.

IPTV, 케이블TV 같은 유료 방송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니TV의 드라마 제작사인 KT스튜디오지니는 지난해 매출이 16% 감소한 4512억원, 영업이익은 73.8% 급감한 120억원에 그쳤다. 드라마 제작비가 급등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했다. KT 관계자는 “유료 방송 독점 공개를 통해 수익성을 제고하려 했지만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고 했다.

◇보편화되는 ‘멀티호밍’

이처럼 방송업계가 콘텐츠 방출에 나서면서, 한 콘텐츠가 지상파, OTT 등 여러 플랫폼을 통해 송출되는 ‘멀티호밍’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해 8~12월 국내에 서비스 중인 OTT 6곳에서 송출된 프로그램 1455개 중 OTT 2곳 이상에서 중복해 방송된 프로그램은 43.7%인 636개에 달했다. 황용석 건국대 교수는 “OTT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방송사나 콘텐츠 제작사들이 OTT에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공급한 결과”라고 했다.

이런 흐름이 결과적으로는 해외 OTT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국내 예능·드라마에 대해 접근이 제한됐던 해외 OTT가 이른바 ‘명작’ 등 인기 프로그램을 대거 확보하면, 콘텐츠 제작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으면서도 시청자 수를 손쉽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연히 제 살 깎아 먹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고민”이라며 “다만 OTT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유통하는 기회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