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2010년만 해도 우리 중소기업이 해외에 가장 많이 수출하는 것은 자동차 부품이었다. 현대차·기아의 해외 공장에 납품하거나, 현대차·기아 2~3차 협력 회사들이 다른 글로벌 자동차 기업에 공급하는 형태가 많았다. 그 밖에도 수출 품목 상위권에는 범퍼 등 자동차 플라스틱 부품에 쓰이는 합성수지, 의류 생산에 활용되는 편직물 등 해외에 공장을 둔 대기업 완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소재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5~6년 새 중소기업 수출 전선의 대표 주자들이 교체되고 있다. 본지가 중소벤처기업부와 함께 최근 15년(2010~2024년)간 중소기업 수출 상위 10품목을 분석한 결과다.

변화의 선두에 서 있는 품목이 화장품이다. 10년 전인 2015년 처음 중소기업 수출 7위로 처음 ‘톱 10’에 들었는데, 차츰 순위가 올라가더니 작년엔 2년 연속 수출 1위에 올랐다. 특히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같은 대기업 브랜드가 아닌 정샘물뷰티, TS트릴리온, 자연인 등의 중소기업이 자력으로 시장을 개척하며 글로벌 시장에 불고 있는 ‘K뷰티’ 바람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장품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수출 상위권에 첨단 반도체 제조용 장비, 배터리·의료 관련 전자 기기 등의 고부가가치 제품이 하나둘씩 이름을 올리고 있다. 대기업의 그늘에서 부품과 소재를 납품하던 ‘대기업 하청형’ 수출에서 자기 브랜드와 기술력으로 직접 시장을 개척하는 ‘독자 수출’ 흐름으로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양인성

◇화장품, K중기 글로벌 진출의 ‘간판’

작년 우리 중소기업의 화장품 수출액은 약 68억달러(약 9조9200억원)로, 국내 화장품 전체 수출(102억달러) 중 67%를 차지한다. 특히 최근 수출 증가세가 더 뚜렷하다. 2023년 2월부터 25개월 연속 수출 1위를 기록 중이다. 화장품 대기업의 세계 진출과 K팝, K드라마 등 우리 문화가 확산하며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데, “한국 제품은 가격 대비 성분 품질이 좋다”는 평가가 더해지며 수출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유통망의 변화도 한몫했다. 15년 전쯤만 해도 중소기업들은 직접 완제품을 만들 능력이 있어도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지고 마케팅을 하기도 힘들었다. 대기업에 납품하며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화장품을 해외 수출하는 중소기업이 8989곳에 달하는데 이 중 1339곳(14.9%)은 온라인으로만 수출을 진행한다. 온라인 상거래가 발달하면서 해외에 오프라인 유통망을 갖추지 않아도, 품질만 좋다면 직접 해외 소비자를 공략할 수 있는 ‘직접 수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산업 재편에 맞춰 기술력 승부

중기 수출 품목의 변화에는 우리 산업구조의 변화상도 반영돼 있다. 2010년대 초·중반 상위권에 있었던 ‘대기업 하청형’ 품목들은 점차 순위가 내려가고 첨단 산업 관련 품목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0년 수출 2위였던 중간재인 합성수지는 2024년 6위로 내려앉았고, 당시 6위와 7위였던 편직물과 철강판은 아예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대신 그 자리에 전자 응용 기기,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이 새롭게 나타났다. 2016년에 수출 10위권에 진입한 전자 응용 기기는 배터리 검사 장비, 피부용 의료 기기, 산업용 정밀 기계 등 다양한 첨단 전자 제품이 포함돼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일본에서 K뷰티 열풍에 힘입어 주름 개선용 고주파 장비, 여드름 치료 레이저 기기 등 피부용 의료 기기 수요가 급증했다.

2018년 수출 10위권에 진입한 ‘반도체 제조용 장비’도 최신 효자 품목이다. 반도체 생산 공정에 들어가는 장비들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해외 반도체 공장에 들어가는 제품 외에도 미국이나 유럽 등의 크고 작은 반도체 회사에 공급되고 있다.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지난해 화장품에 이어 수출 2위 품목에 자동차가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대부분 중소기업의 중고차 수출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와 그 주변국에 자동차 공급 부족이 나타났는데 우리 기업들이 이 기회를 포착해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인근 국가 수출을 늘렸다고 한다.

다만 미국에서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며 세계적인 무역 전쟁이 벌어질 조짐이 나타나는 것이 변수다. 우리 중소기업 수출의 약 32%가 미국과 중국에 집중돼 있는데, 관세 전쟁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