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교섭본부장 귀국 “美, 원만한 협상 원해” -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워싱턴 DC 방문 일정을 마치고 11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모습. 그는 “미국이 한국과 (관세) 협상을 원만히 처리하고 싶어 하는 의지를 가진 것으로 파악했다”고 했다. /연합뉴스

LG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 관세 3개월 유예‘를 전격 발표한 지난 10일, 관세 담당인 ‘플레이북 전담 대응팀’ 주도로 긴급히 대책 논의에 나섰다. 지난 3일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25% 등 전 세계에 ‘상호 관세 표‘를 내밀던 날, 긴급 회의를 가졌지만 일주일 새 상황이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당시 LG는 국가별 상호 관세와 물류비, 생산원가 등을 모두 합쳐 한국, 베트남, 태국 등 각 생산 기지에서 미국까지 도착하는 총비용(landed cost)을 분석, 세세한 글로벌 물량 조정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세계 각국과 협상하겠다고 나서면서 상황이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삼성전자 역시 CFO(최고재무책임자) 주재로 관세 대책 회의를 계속 이어가며 공급망 분산, 부품 수급 현황 등을 챙기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때문에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다. 현대차가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직후 현대차그룹의 대미(對美) 주요 생산 기지인 멕시코에 25% 관세를 때리겠다고 선언했다. 지난달 초 관세 부과가 시작됐지만, 단 하루 만에 ‘자동차는 1개월 면제’ 발표가 나왔다. 관세 위협이 계속되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달 24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210억달러(약 31조원) 투자를 발표하며 미국 정부의 환심을 샀다. 하지만 불과 이틀 뒤 트럼프는 ‘자동차 25% 관세‘를 때렸다. 별개로 자동차 부품에도 5월 3일 이내에 25% 관세가 부과될 계획이다.

최태원 SK그룹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지난달 기자 간담회에서 “지금 가장 큰 걱정은 ‘초(超)불확실성 시대‘라고 할 정도의 ‘수퍼 언노운(super unknown)‘”이라며 “불확실성이 너무 커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고, 결정도 가능한 한 미루게 된다”고 했다.

그래픽=이철원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 또 어떻게 정책을 바꿀지 모르다 보니, 상호 관세가 일시 유예된 기간을 틈타 ‘물량 선확보’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베트남에서 의류를 제조하는 국내 기업 관계자는 “최근 미국의 큰손 바이어들에게 90일 이내에 제품을 선적해 줄 수 있느냐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했다.

수출 중소기업들도 불확실성에 시달리고 있다. 한 제조 중소기업 관계자는 “미국의 관세 때문에 매년 정기적으로 들어오던 주문이 딱 끊긴 상태”라며 “계속 이 상태가 이어지면 중소기업 상당수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운영 중인 관세 상담 창구 ‘관세 대응 119’에 이달 10일까지 총 2389건의 상담이 접수됐다. 상호 관세 발표 전엔 하루 평균 21건의 상담이 접수됐으나, 관세 발표 이후엔 171건이 돼 8배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

기업들은 트럼프가 상호 관세 유예를 밝힌 향후 3개월을 ‘협상의 골든 타임‘으로 보고 있다. 국내 한 대기업 임원은 “당분간은 정책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일단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하면서 면밀하게 협상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했다. 상당수 기업은 이 기간 중 한국에서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만큼, 통상 외교 정책의 공백이 조금이라도 노출될까 우려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