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일본 무역 협상 수석 대표인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과 면담 뒤 기념 사진을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렸다./백악관 X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16일 일본과 관세 협상에서 주일 미군 주둔 경비 증액을 요구했다. 우리와 여러 측면에서 비슷한 일본이 미국과 어떻게 협상하는지를 ‘참고서’로 삼으려던 우리나라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국내 전문가들은 우리가 불리한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관세 협상과 별도로 접근하는 게 낫지만, 미국의 의도가 분명해진 상황에서 이를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하는 ‘원스톱 쇼핑’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방위비, LNG(액화천연가스), 자동차 수입 등이 미국의 무역 적자 해소를 위해 한꺼번에 테이블에 올라오는 셈이다. 우리로서는 미국이 해군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K조선의 기술력과 에너지 수요 급증 국면에서 돋보이는 K원전의 건설·운용 능력을 관세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18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협상에서 주일 미군의 주둔 경비 부담과 미국산 자동차의 일본 내 판매, 대일 무역 적자 등 3가지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머니 머신(현금 인출기)’으로 부르며, 지난 대선 기간에 분담금 9배 이상 인상을 요구한 것을 감안하면 한미 간 방위비 재협상 또한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본은 미국과 2022~2026년 연간 평균 2210억엔(약 2조2000억원)을 현물을 포함해 주일 미군에 주기로 했고, 우리 외교부는 미 국무부와 지난해 10월, 2026년 분담금 총액을 올해 대비 8.3% 늘어난 1조5192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하고 이후 물가에 따라 인상하기로 했다.

◇“K원전·조선, 관세·방위비 협상 지렛대로 삼아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주일 미군 문제를 관세 협상장에 들고나옴에 따라 우리나라도 방위비 분담금 의제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정부는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다음 주 미국을 방문해 스콧 베선트 재무 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 장관 등과 2+2 협상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백형선

애초 우리는 무역 적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원스톱 쇼핑’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미·일 간 협상 상황을 감안하면 방위비 분담금을 관세 협상과 따로 다루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질적으로는 연계하더라도 공식 협상에선 의제의 성격을 고려해 다른 바구니에 넣는 ‘형식적 분리’ 방식이 유리하다는 제안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방위비 인상에 대한 윤곽을 양측이 어느 정도 협의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동차 관세 인하 등을 받아낸 뒤 추후 분담금 인상 수준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미국이 일본에 무역 적자 해소를 위해 요구한 자동차 수입 확대도 역시, 우리에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일 상호 관세 발표 때 ‘한국에선 자동차의 81%가 한국산이고, 일본에서는 94%가 일본산’이라고 콕 집어 지적한 것처럼 두 나라가 미국에 많은 차를 팔면서도 미국 차 수입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지난해 미국 시장에 각각 154만대와, 138만대를 수출하며 멕시코에 이어 2, 3위를 나타냈다. 반면 지난해 국내에서 미국산 차는 4만대 정도가 팔려 2.5%에 불과했고, 일본 시장에서 미국산 자동차 판매는 연 1만~2만대뿐으로 1%를 밑돈다.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선 미국산 차 수입이 필요하지만, 일본이나 한국 모두 자국 소비자들이 미국 차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다는 점은 난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측이 수입 확대를 요구하며 자동차 배출 가스 규제 완화 등을 요구하는 상황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차 수입을 갑자기 늘리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이 완화 또는 폐지를 요구하는 자동차 관련 각종 비관세 장벽을 없애는 것도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일본·대만과 함께 우리에게 요구하는 알래스카 LNG(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 참여 또한 우리가 관세 협상을 풀어갈 때 활용할 수 있는 지렛대 중 하나로 꼽힌다.

허윤 서강대 교수는 “세계 최고 기술력을 지닌 조선 분야 협력이나 미국 원전에 대한 우리 업계의 유지·보수 사업 참여 등 우리만이 줄 수 있는 카드들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스톱 쇼핑

해결해야 할 의제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협상 방식. 원래 ‘여러 종류의 상품을 한곳에서 살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각국과 관세 협상을 할 때 통상 문제뿐 아니라 방위비 분담금 등의 이슈들을 함께 처리하자면서 이 용어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