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뇌피셜’이 넘쳐 죄송합니다!

어제(22일) 일본 교도(共同)통신이 일본 최초의 제트여객기 국산화 사업이었던 ‘스페이스제트’가 사실상 끝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정확하게는 ‘(스페이스제트 사업의 당사자인) 미쓰비시중공업이 사업 개발비와 인원을 대폭 삭감, 사업을 동결하는 방향으로 최종 조정하고 있는 것이 22일 복수 관계자 취재로 밝혀졌다’고 썼지요. 표현은 동결이지만, 정황으로 볼 때 사실상 사업은 끝났다고 봐도 됩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23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를 비롯한 일본의 거의 모든 신문이 교도통신 보도를 그대로 인용해 1면에 실었습니다. 10여년간 직접 비용만 11조원 이상 쏟아부은 일본 최대 ‘국뽕 프로젝트’의 종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스페이스제트 사업은 오랜 시간과 인력·자금을 허비하고 이제 끝나지만, 비슷한 관(官)주도 프로젝트는 지금도 여전히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차라리 스페이스제트 사업은 코로나 사태 ‘덕분’에 이제라도 끝나는게 일본으로서는 다행일지 모릅니다. 시간을 끌면서 인력·돈을 계속 낭비했더라면 더 큰 재앙이 됐을 겁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도 똑같은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 사업이 어떤 것이고, 왜 시작했고, 왜 이렇게 끝날 수 밖에 없었는지 설명해 보겠습니다.

일본 최초의 국산 제트여객기인 '스페이스제트'. 미쓰비시중공업의 자회사인 미쓰비시항공기가 개발하고 있다. /미쓰비시항공기

◇일본 정부 주도로 시작된 제트여객기 국산화 사업

스페이스제트는 십수년전 일본의 산업통상자원부 격인 경제산업성 주도로 시작된 국가 프로젝트였습니다. 일본의 산업 역량을 결집해 90석 짜리 소형 여객기를 국산화하겠다는 목표로 2008년 공식 출범했지요. 원래 개발비는 1500억엔, 납품 예정일은 2013년이었습니다. 정부가 개발비의 3분의 1인 500억엔을 대고 미쓰비시중공업이 자회사인 미쓰비시항공기를 설립해 사업을 주도키로 했습니다. 주요 출자자는 미쓰비시중공업, 도요타자동차, 스미토모상사, 미쓰이물산, 일본정책투자은행 등으로 민관일체의 야심 찬 프로젝트였지요.

스페이스제트 사업은 일본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사업이었지요. 요즘 말로 하면 진정한 ‘국뽕’의 산물입니다. 국뽕이 머릿 속이나 인터넷 댓글에서만 끝나면 다행이겠지만, 이것이 정치를 통해 정부 결정으로 이어져 민간기업까지 잘못 움직였을 때 어떤 재앙이 펼쳐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지요.

일본은 2차 대전 이전부터 항공기 산업에 대한 꿈이 남달랐습니다. 2차 대전 초기에 미쓰비시중공업이 만든 제로 전투기는 미군 전투기와 처음 맞붙었을 때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기도 했지요. 물론 당시 제로 전투기의 실력이 조종사 안전을 외면하고 성능 향상에만 올인한 측면도 있고 해서 밀덕(밀리터리 덕후)들에게 까이는 부분도 있지만, 당시 세계적으로 뛰어난 전투기 중 하나였음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만큼 일본의 항공기 개발 역사가 길다는 겁니다. 그러나 패전 후 미 군정(軍政)이 7년간 항공기 생산·개발을 금지하면서 타격을 입었고 산업 기반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의 영광 재현할 최고의 재료

그러다가 일본의 자존심을 세워준게 1962년 나온 전후(戰後) 최초의 국산 프로펠러 여객기 ‘YS11’이었습니다. 당시에도 민관 출자회사인 ‘일본항공기제조’가 개발을 맡았었지요. YS-11은 1964년 도쿄올림픽의 성화 봉송에 사용됐는데, 1964년 운행을 시작한 세계 최초의 고속철 신칸센(新幹線)과 더불어 일본 국민에게 전후 부흥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YS-11은 이후 제트여객기에 밀려 1973년 생산이 중단됐고 2006년에는 운항도 중단됐지요.

스페이스제트 사업은 일본인에게 전쟁 전의 일본 항공기 산업, 1964년 도쿄올림픽의 영광과 일본 경제의 부흥을 떠올리게 합니다. 스페이스제트는 아무리 늦어도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올해 전에 납기가 끝날 예정이었지요. 여객기 납기와 올림픽이 예정대로 됐더라면 1964년에 이어 또 한 번 자국산 여객기가 성화 봉송에 사용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공교롭게도 이 사업은 아베 신조 전 총리와도 연결됩니다. 2006·2007년 아베 1기 내각 때 경제산업성 주도로 이 사업이 본격 추진됐거든요. 2007년 말 아베 당시 총리는 실각했지만, 이듬해 경제산업성 주도로 결국 프로젝트가 시작됩니다. 2008년 이후로도 사업성이 희박하다는 비판은 계속됐지만, 어쨌든 국가가 기치를 내건 프로젝트인만큼 유지가 됐고요. 2012년 말부터 최근까지 아베 2기 내각이 계속 됐으니, 그 사이 이 프로젝트가 중단될 일은 없었던 것이죠. 경제산업성을 앞에 내세워 이런 계획을 꾸미는 것은 아베 전 총리의 2기 내각에서도 많이 봐왔던 모습입니다.

특히 아베 전 총리에게는 일본의 부흥을 알린 도쿄올림픽의 추억이 매우 강렬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를 읽어봤는데요. 아베는 책에서 1964년 초등학교 4학년생으로 도쿄올림픽을 경험했던 것을 인생 최고의 추억으로 꼽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기억을 아주 길게 설명하고 있지요. 아베 입장에서는 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나라’의 영광을 다시 한번 세계에 알리는데 도쿄올림픽과 국산 제트여객기가 최적의 무대와 소재였을겁니다. ’1964년 YS11로 성화를 봉송했듯이, 최초의 국산 제트 여객기로 2020년 도쿄올림픽 성화를 봉송한다면 얼마나 멋질까' 아마 아베 총리는 그걸 꿈꿨을 겁니다. 자기 나라에 대해 ‘대단하다, 최고다, 아름답다’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 말하긴 어렵지요. 하지만 이러한 애국심이 맹목적이라든지, 자기성찰이 결여된다든지, 냉철한 분석이 무시된다든지 하면 얼마든지 재앙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2016 리우올림픽 폐회식에서 수퍼마리오 분장을 하고 나온 아베 전 일본 총리

◇“우리가 최고, 할 수 있다"에 기술·수요 분석은 무시

결론적으로 이 사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당초 2013년 납품할 예정이었지만, 애초에 꿈만 컸을 뿐 노하우도 많이 부족했고요. 성공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전문가 기술·수요 분석도 무시됐습니다. 그렇다면 외부의 힘을 빌려서라도 성공 가능성을 높여야 하는데, 오랫동안 내부적으로 끼리끼리 해결하려 하는 바람에 소중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해외 기술·인력을 대거 영입하는 등 만회에 나섰지만 너무 늦은 판단이었습니다. 결국 5차례 연기 끝에 2020년 도쿄올림픽 전에는 무조건 납품하는 것으로 미뤘는데요. 이것이 다시 지난 2월에 2022년 이후로 연기한다는 6번째 연기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던 겁니다.

이러는 사이에 개발비는 당초의 7배인 1조엔까지 늘었고, 납품일도 원래 계획보다 9년 이상 늦어지게 된 것이죠. 부담 증가의 영향으로 미쓰비시중공업은 2020년 3월기 연결 결산에서 20년만에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미쓰비시항공기의 모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의 올해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스페이스제트 사업 적자는 2018년 852억엔에서 작년 2633억엔까지 확대됐습니다. 올해는 인력·비용을 대폭 줄인다는 전제로도 1300억엔 적자를 예상하고 있지요. 최근 3년간 적자만 5조원이 넘습니다. 여기에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겁니다.

◇자국중심주의 정치가 기업과 연결될 때 초래할 재앙 경계해야

사업 채산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코로나 사태 훨씬 이전부터 꽤 있었습니다. 민항기 시장은 장거리 국제노선을 중심으로 하는 중·대형기(130석 이상)와 상대적으로 짧은 거리를 다니는 소형기(130석 미만)로 나뉘는데요. 스페이스제트는 소형기 중에서도 좌석이 100석 이하인 ‘리저널 제트기’에 속합니다. 리저널제트기 시장은 전체 민항기 시장의 5%도 안되는 아주 작은 시장입니다. 게다가 이미 리저널 제트기 시장의 80%는 봄바디어와 엠브라에르가 장악하고 있고, 중국은 자국시장을 무기로 또 자체 보급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개발한다 해도 일본 항공사 이외에 대량으로 사줄 곳을 찾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작은 여객기로 시작해 전체 항공기 산업을 키워나가겠다며 신규 시장 진입을 시도했던 거죠.

미쓰비시중공업은 최근 스페이스제트 사업의 자산 가치를 '제로(0)로 하는 손실처리를 결정했습니다. 지난 10여년간 11조원 이상 들어간 사업의 가치가 0원이 됐다는 의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10여간의 세월과 11조원의 돈, 그리고 거기에 포함된 세금만 날린 것이 아닙니다. 헛된 방향에 소중한 자원을 쏟아붓는 바람에 잃은 기회비용까지 합치면, 아마도 수십조원의 손실을 남기고 끝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프로젝트는 이제라도 끝나는게 일본을 위해 다행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와 비슷한 관(官)주도 사업이 지금도 도처에서 벌어지고 또 시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면밀한 분석과 사업 판단이 결여된 채 ‘국뽕’ 의식과 일부 정치인의 의도에 따라, 미래 세대를 위해 소중하게 쓰여져야 할 세금을 낭비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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