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투자자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침체된 미국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WSJ는 리얼캐피털애널리틱스를 인용해 올 들어 9월까지 한국 투자자들의 미국 부동산 투자 규모는 15억6000만 달러(약 1조 7200억원)라고 전했다. 이는 전년(12억 4000만 달러) 대비 25.8% 증가한 것이다. 한국 자본의 미국 부동산 시장 투자 규모는 지난해 10위였지만, 올해는 캐나다와 독일에 이어 세 번째를 차지했다.
WSJ는 “최근 몇 년간 중국 투자자들이 정부의 통제로 미국에서 철수하고 있고, 다른 외국 투자자들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투자를 외면하고 있는 사이 한국 자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메사웨스트캐피털 창업자인 제프 프리드먼은 “유럽이나 미국 투자자들과 달리 한국 기업은 중소도시나 교외 지역의 부동산을 사들인다”고 했다.
대표적 사례는 한국의 솔브레인홀딩스가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의 사무실 건물 3개를 1억 6000만 달러(약 1770억원)에 매입한 것이다. 아마존이 임대로 사용 중인 로스엔젤레스 인근 창고의 경우 입찰자 18곳 가운데 절반인 9곳이 한국 자금이었다. 아마존이 10년간 임대하는 시애틀의 6억 달러(약 6640억)짜리 빌딩은 응찰자 12곳 중 4곳이 한국 투자자였다. 이 거래를 주관하고 있는 부동산 업체 뉴마크의 알렉스 포셰이 국제자본시장부문 부회장은 “한국 자본의 입찰가가 가장 높았다”고 했다. 다만 낙찰자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사례는 또 있다. 미국 리얼에스테이트위클리는 지난달 27일 “부동산 전문 운용사 KABR그룹이 뉴저지주 리지필드 파크의 오피스빌딩을 한국 투자회사 AIM에 매각했다”고 보도했다. 이 빌딩은 뉴욕 맨해튼 중심부에서 직선거리로 10㎞가량 떨어져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거래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국내 IB업계에서는 700억원대로 추정했다. 매각 후 건물 관리는 KABR그룹이 맡는다고 매체는 전했다. 한국 자본이 사들인 이 빌딩에는 삼성전자 미국법인(SEA)이 입주해 있다. 근무하는 임직원만 약 10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자본의 미국 부동산 투자가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WSJ는 ‘원인’으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꼽았다. 연준이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게 한국 자본에게 매력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포셰이는 “외국 기업이 미국에 투자를 할 때는 환율 변동에 대비해 위험을 회피(헷지)한다”며 “위험회피 비용은 미국과 본국의 단기 금리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2년 전만 해도 원화를 달러로 헷지하려면 투자금액 대비 연간 2%의 비용이 들었다. 한국 투자자들의 미국 부동산 투자를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가격 측면에서도 환율 헷지를 할 필요가 없는 미국 투자자들에 비해 경쟁력을 갖기가 어려웠다. 포셰이는 “미 연준이 금리를 인하한 이후 헷지 비용이 0.1%로 낮아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