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16년 만에 처음 글로벌 경제의 단독 견인차로 떠오르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코로나 최대 피해국이었던 미국이 팬데믹 이후 1년 만에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경제 부문에서도 글로벌 선두로 치고 올라가고 있다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세계 주요 경제권 중 백신 보급 속도가 빠른 데다 바이든 정부의 적극적인 돈 풀기 정책이 더해지면서다.
영국 경제연구소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4일(현지 시각) “미국 경제가 최근 엄청난 추진력을 얻으면서 미 내수를 넘어 아시아·유럽 등 각국에 낙수 효과를 일으킬 전망”이라며 “미국이 2005년 글로벌 경제 성장의 단일 제공자로서의 지위를 중국에 내준 뒤 16년 만에 다시 그 지위를 되찾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번 미 경제 회복이 팬데믹뿐만 아니라 2008년 금융 위기를 전후한 침체까지 극복할 수준이라는 것이다.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3일 올해 미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0월 4.1%에서 6.3%로 상향 조정하면서 “올해 미국이 경제 바통을 중국에서 이어받는 흐름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미 연방준비제도와 뱅크오브아메리카도 성장률을 각각 6.5%와 7%로 올려 잡았다. 5일 시작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연례총회에서도 미 성장률 전망은 장밋빛을 띨 가능성이 크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미국은 지난해 코로나로 -3.5%의 성장률을 기록, 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침체기를 보냈다. 이런 기저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미국 같은 선진 경제권에서 신흥 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6~7%대 성장률이 기대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중국은 지난해 2.3% 성장률을 유지했지만 최근 올해 목표치를 6%로 조심스럽게 올렸다.
미 경제 회복은 경제와 보건 정책이 시너지를 낸 덕분이란 분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전임 트럼프 정부 말기부터 바이든 정부까지 총 3차에 걸친 코로나 지원금 지급만으로도 경제성장률을 약 1.5%포인트 올린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소비가 이끄는 미국 경제의 특성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지난 연말부터 지원금으로 가구, 노트북, 옷 같은 소비재·내구재를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올 초부터 미국의 대외 수입이 폭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소비자들이 보복하러 외출하기 시작한다”며 미국인들이 코로나 이후 약 1년간 이른바 ‘보복 소비’를 위해 비축한 돈이 1조7000억달러(약 1917조원)에 달한다고 했다. 또 미국 웰스파고은행은 앞으로 6개월 동안 소비가 살아나는 기세가 최근 70년 사이 가장 강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달 1조9000억달러(약 2150조원) 경기 부양안에 이어 2조달러(약 2260조원) 규모 인프라 투자안을 발표하는 등 공격적인 재정 확대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번 달 말에도 또다른 복지 인프라 투자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이와 동시에 미 연준은 0%에 가까운 초저금리와 통화 완화 정책을 최소 2022년까지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지만, 경제 회복세부터 확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일 미 노동부는 “3월에 91만6000개의 일자리가 추가되고, 실업률은 팬데믹 이전 수준에 가까운 6%대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이런 경제 정책이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한 건 백신 접종 속도다. 코로나 초기 방역엔 실패했지만 백신에 사활을 건 미국은 4일 현재 백신을 한 번이라도 맞은 사람이 인구 3분의 1을 넘는 1억600만여 명에 달한다. 이런 속도라면 5월 말~6월 초쯤 미 인구 70%가 백신을 맞아, 세계 거대 경제권 중 가장 먼저 집단면역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유럽연합(EU) 최대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중국 등은 늦은 백신 보급이 여전히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에선 ‘중국 공포’의 핵심인 경제 문제의 실마리가 풀려가고 있다는 낙관도 퍼지고 있다. 영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소 EIU의 사이먼 뱁티스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최소 향후 50년간 미국은 중국보다 잘사는 나라일 것”이라고 했다. 그간 미 국내총생산(GDP)이 중국에 크게 따라잡혀 2027~2028년쯤 총 경제 규모는 역전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부(富)의 척도인 1인당 GDP는 미국이 여전히 중국보다 6배나 많고, 이는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차이라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내 살아생전 중국이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 것도 이런 자신감의 발로라는 해석이다.
미국 경제 회복은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에도 호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3월 대미(對美) 수출액은 79억5000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9.2% 늘었다. 이 중 자동차 수출은 17.1%, 반도체 수출은 20.6% 증가했다. 미국의 소비 심리 회복 때문에 대미 수출 증가세는 7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금융 부문이다. 미국 경기 반등은 물가 상승을 동반한다. 미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 은행권 가계대출이 1000조원 넘고, 기업대출 또한 1000조원 가까운 한국 입장에서 금리 상승은 실물경제 회복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특성상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 반등은 반가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한국 경기가 회복돼 자연스럽게 금리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미국 금리가 올라 어쩔 수 없이 한국 금리가 오르는 상황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