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중국 허베이성 베이다이허(北戴河)에 세워진 ‘중국몽’ 기념비. 높이 21m이며 구리로 만들었다.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정치 목표인 ‘중국몽’을 형상화한 첫 비석이다./조선일보DB

1990년부터 30년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39배, 1인당 GDP는 32배 늘었다. 미국 GDP의 6%이던 나라가 지금은 72%에 육박한다. 자동차, 반도체, 항공기 등 여러 산업에서 중국은 세계 최대 시장이다. 지난해 중국에서 팔린 전기차(118만대)는 미국(32만대)의 3.6배에 달한다.·

하지만 시진핑 집권 2기(2018년~22년) 들어 중국은 ‘공산당이 영도(領導)’하는 국가 자본주의를 노골화하고 있다.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국이 되려는 ‘중국몽(中國夢) 야심’에서다. 전문가들은 “중국공산당이 중국몽 달성을 위해 국내외 기업들을 전방위 압박하고 있다”며 “한국도 대응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진경

◇‘직격탄’ 맞는 韓 기업들

2014년까지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3년 연속 질주하던 삼성전자는 4년 만인 2018년에 점유율 0%대로 추락했다. 이후 올 1분기까지 4년 연속 0%대에 머물고 있다. 중국 시장 점유율 1위이던 금호타이어는 2011년 3월 국영 CCTV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편파 방송후 흑색선전 등에 시달리다가 2018년 중국 기업에 팔렸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은 “중국 경쟁사 과소평가와 시장 오판 탓도 있지만 당국의 조직적인 흠집내기와 불매 운동만 없었어도 삼성이 이렇게 단기간에 몰락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2017년 한국 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계기로 한국 기업들은 더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국 방어 목적의 사드(THAAD) 배치를 빌미로 중국은 한국에 경제 보복을 가했다. 2017년 초 지린(吉林)성 롯데마트 앞에서 중국인들이 ‘한국 롯데가 중국에 선전포고했다. 사드를 지지하는 롯데는 당장 중국에서 꺼져라'라는 구호가 적힌 대형 플래카드를 펼쳐놓고 시위하고 있다./조선일보DB

기업분석 연구소인 ‘CEO스코어’의 박재권 대표는 “중국에 생산법인을 둔 113개 한국 기업 실적을 지난달 분석한 결과, 2016년 대비 작년 매출이 늘어난 곳은 반도체와 전기차배터리 두 업종 뿐”이라고 했다. 2012년 중국 2위이던 현대차의 중국 매출은 최근 4년 만에 66% 급감했고, 이랜드 매출은 반토막 났다.

한국 기업들은 ‘차별 대우’까지 받고 있다. 2017년부터 지난달까지 일본과 미국 게임회사들은 중국 당국으로부터 169개, 111개의 판호(版號·신규 게임 허가증)를 받은 반면, 한국은 9개에 그친 게 대표적이다.

◇中공산당의 ‘외국 기업 때리기’

시가총액 세계 1위인 애플과 세계 1위 전기차 기업 테슬라도 중국공산당(CCP)의 ‘표적’ 명단에 올라있다. 애플은, “2017년 제정된 국가정보법을 위반하면 중국 사업을 폐쇄할 수 있다”는 CCP의 협박에 굴복, ‘사용자 정보보호’라는 자사의 핵심 기업 원칙을 포기하고 아이폰 고객 개인 정보와 관련 데이터 소유권을 중국 당국에 최근 통째로 넘겼다.

공산당 정법위원회는 올 4월 미국 테슬라를 ‘도로 위의 보이지 않는 살인자’라고 지목했다. 3월에는 국영기업과 인민해방군에 ‘테슬라 구매 금지령’을 내렸다. 중국에서 테슬라가 계속 잘 나가자, 2019년까지만 해도 상하이에 대규모 공장 건설을 간청하던 CCP가 ‘견제’와 ‘옥죄기'로 180도 표변한 것이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엘론 머스크가 2020년 1월 7일 중국 상하이 기가바이트 테슬라 생산공장에서 열린 '모델3' 인도식에서 자켓을 벗어던지고 막춤을 추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이영조 전 경희대 교수는 “중국에서 모든 기업의 가치 기준은 중국몽 실현에 얼마나 도움되느냐이다”며 “여기에 걸림돌되는 기업들은 CCP가 배후조종하는 집단 불매 운동과 비난 댓글 공세에 시달린다”고 했다.

반대로 자국 기업은 막대한 정부 보조금과 연구개발(R&D) 지원, 경쟁 외국기업 무력화 같은 방법을 총동원해 지원한다. 2017년부터는 ‘중국 브랜드의 날(5월10일)’ 등으로 토종 브랜드를 밀어준다. 덕분에 페이허(飛鶴)와 퍼펙트다이어리(完美日記)는 분유와 색조 화장품 시장에서 1~2위로 승승장구한다. 2014년에 존재감도 없던 CATL(寧德時代)은 5년 만에 전기차배터리 세계 1위에 등극했다.

◇MZ세대도 親공산당·민족주의

지난해 글로벌 500대 기업에 포함된 중국 기업(124개) 가운데 국영기업은 66%에 달했다. 2017년 기준 2020만명을 고용하는 5만1000여개 국영기업의 중국 GDP 기여도는 27%가 넘었다. 이는 OECD 회원국을 포함한 39개국 국영기업 총합(2467개, 920만명)을 크게 웃돈다.

미국·중국 국내총생산(GDP) 추이

왕윤종 동덕여대 교수는 “높은 국영기업 비중은 중국이 당(黨)의 방침에 따라 시장의 공정한 게임 규칙을 위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CCP는 2018년부터 기업 증시 상장 요건으로 ‘당조(黨組) 설립’을 의무화했다. 이로써 ‘경제성장을 통한 기업 활동 자유 확대’ 기대감은 소멸됐다.

중국 비즈니스 환경이 나아질 가능성도 희박하다.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조차 오랜 공산주의 세뇌 교육으로 자유·민주 같은 인류 보편 가치 보다 ‘중국은 세계 최고’라는 폐쇄적 민족주의와 ‘애국 소비’에 갇혀 있어서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전무는 “중국 투자·진출 확대라는 기존관념에서 벗어나 대중(對中) 전략을 재검토하고 고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격차 기술’ 확보하고 ‘민주주의 기술동맹’에 적극 올라타야”

中 시장에서 한국의 3가지 생존법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토사구팽’ 당하지 않는 방도로서 세가지를 제시한다.

박기순 교수, 최병일 교수, 안세영 전 교수.

첫 번째는 중국을 압도하는 ‘초(超)격차 기술’을 확보하자는 자강(自强)론이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중국 판매가 계속 늘고 있는 고품질 메모리 반도체처럼 산업 전(全) 분야에서 중국이 베끼지 못하는 우리만의 독보적인 ‘초격차 기술’을 갖는 게 살 길”이라고 했다. 미국 애플과 한국·일본의 전기차 배터리 기업들이 중국에서 선전(善戰)하는 것도 차별화된 기술력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두 번째는 서방 민주주의 진영과의 ‘동맹 강화론'이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더이상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도식적 프레임에 사로잡혀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할 때가 아니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기술동맹에 적극적으로 올라타 우리의 핵심 기술 자산을 확장하고 중국과의 격차를 더 벌려야 한다”고 했다.

세 번째는 중국 시장에 특화된 ‘유연한 전략적 대응론'이다.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의 스튜어트 블랙(J. Stewart Black) 교수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최신호(2021년 5~6월호)에서 “중국공산당의 국책 사업인 ‘중국제조 2025’ 등에 포함된 업종 기업들은 중국 사업 비중을 대폭 줄이거나 제3국으로 주요 부문을 옮기는 게 현명하다”고 밝혔다.

알리바바그룹과 디디추싱, 테슬라 등에 대한 최근 무차별 공격에서 보듯, 중국공산당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는 일방통행을 불사한다. 안세영 전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일본이나 유럽처럼 우리 기업들도 중국 내 대형 투자를 최대한 회피하고, 자산도 많이 두지 않는 보수적 접근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은 “서방과 판이한 중국 시장의 특수성과 강·약점을 꿰뚫는 인재들을 많이 키워 이들에게 중국 사업을 맡겨야 실패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했다.